“아직 조국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거부한 레둑토
“아직 조국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거부한 레둑토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10.18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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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형모 편집국장.
백형모 편집국장.

 

상 중의 상이라 할 수 있는 노벨상, 그 중에서도 가장 명예로운 노벨평화상이다.

명예와 상금이란 두 개의 영광을 목에 걸게 되며 국제적으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분으로 격상시키는 금관이다. 그해 노벨상 후보자 대열에 오른 것만으로 영광인 상이다.

그런 노벨평화상을 당당히 거부한 세계 유일의 인물이 있다. 베트남 출신의 레둑토( 1911~1990)라는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다. 며칠 전 10월 13일은 그의 21주기 사망일이었다.

1973년 노벨상위원회는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레둑토가 베트남종전협정(파리협정)에 공동서명함으로서 차이나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결정했다.

하지만 레둑토는 “아직 나의 조국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그러자 세계 각국은 잘못된 수상자 지명이라며 키신저도 수상을 포기해야한다는 여론으로 들끓었다. 노벨상위원회 위원 2명은 키신저의 수상에 항의하며 위원직을 사임했고, 뉴욕타임스는 이 상을 ‘노벨 전쟁상’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반대로 레둑토는 아시아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고도 역대 최초, 유일의 평화상 수상 거부자가 됐다.

수상의 영광은 갖지 못했으나 자신의 인격에 꺼지지 않는 촛불을 밝혔고 원년 혁명가들의 영혼에 영원한 영예를 안겨 주었으며 조국 베트남에는 더 지워지지 않는 영광을 선사했다.

미국이라는 최강대국을 상대로 3년 동안 종전 협상을 이끌면서도 당당하게 키신저를 압도한 인격과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북베트남 지역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남딘성에서 태어난 레둑토는 청년기부터 학생운동을 통해 민족해방운동에 가담했고, 1930년 인도차이나 공산당 창립 멤버로 활약했다. 수차례 프랑스 당국에 의해 체포-투옥-석방을 거듭하면서도 당 중앙위원과 정치국원 간부로 활동했다.

1969년부터 비밀리에 벌인 미국 측과의 강화회담 베트남 대표로 나섰다. 그는 능수능란한 지연 전술로 전황에서 우위가 공고해질 때까지 협상을 끌고, 반전 여론에 쫓기던 키신저를 농락하며 사실상의 항복문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훗날 키신저는 회고록에 “레둑토는 때로는 완강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협상 타결을 3년여간 지연시켰고, 미국 언론에 모호한 말을 흘리면서 지연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곤 했다”고 썼다.

그러나 이 말은 거꾸로 해석하면 “키신저는 레둑토의 교묘한 전술에 농락당했다”라고 볼 수 있다.

1972년 7월 19일, 베트남 종전협정을 위해 프랑스 파리의 다르트 11번가에서 미국-북베트남 협상이 한창이었다.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와 베트남 레주언 총비서의 오른팔인 레둑토가 6시간 반 동안 협상 중이었다. 휴식 시간이 되자, 키신저가 레둑토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베트남인들이 용기만 가졌다면, 미국은 전장에서 이미 당신들을 끝장냈을 것이다.”

키신저 발언의 취지는 ‘베트남인들은 용기 뿐만 아니라 지성까지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미국이 전쟁에서 질 위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레둑토가 물었다. “당신 발언은 베트남인이 미국인보다 더 영리하다는 의미인가? 미국은 베트남보다 과학과 기술이 훨씬 진보했고, 시민들의 교육 수준도 높지 않는가? 반면, 베트남은 작고,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원시적인 농업국가일 뿐인데?”라고 미국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키신저가 이어받아 “아니다. 베트남은 미국보다 훌륭한 민족이다. 만약 미국이 더 영리하다면, 왜 베트남에 승리하지 못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이때 레둑토는 명언을 남긴다.

“미국은 24시간 끝없는 문제에 봉착하며 미국의 지성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베트남은 하나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 외의 다른 대안이 없었다. 우리 베트남인은 하루 24시간 동안 한 가지 문제에 집중했을 뿐이다. ‘어떻게 우리가 미국인들을 패배시킬 수 있는가’라고…”

이 일화는 두 가지 중요한 쟁점을 부각시킨다. 첫째, 약자는 하나의 목표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베트남의 경우, 어떻게 미국을 무찌를 것인가. 반대로, 강자는 세계적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힘이 분산되고 낭비되기 마련이었다.

둘째, 약자는 적이 그들에 대해 아는 것보다 자신의 적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 없이, 약자의 성공 확률은 희박하다.

차기 대통령 선거로 뒤범벅이 되고 있는 한국.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을 지쳐 쓰러지게 만든 베트남 레둑토처럼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킬 집념과 통솔력의 인재는 누구인지 판세를 잘 들여다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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