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종호 장성읍장
인터뷰 / 박종호 장성읍장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1.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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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이 뛰놀던 황룡강 상전변해, 고향 발전에 감개무량”

1년 동안 공로연수...청춘 불사른 31년 공직 ‘아쉬움’

장성읍에서 공직 시작...서기관 읍장으로 끝나 감회

 

“31년 청춘을 장성군이 성장하는 현장에서 늘 함께 보내온 만큼 앞으로도 내 고향이 잘되길 바랄뿐입니다. 만나시는 분들마다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이길 기원드립니다”

지난 29일 장성읍사무소 회의실에서 퇴임식을 가진 박종호 제28대 장성읍장(60)의 소감이다. 앞으로 공로연수 기간이 1년 남았기 때문에 공직은 유지되지만 현역에서 떠나는 아쉬움은 말할 수 없다.

91년 7급 공채로 공무원을 시작, 장성읍사무소 산업계로 첫 발령을 받은 뒤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장성읍장으로 퇴임하는 박 읍장의 소회는 남다르다. 2016년도에 북이면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을 장성군청에서 핵심업무를 담당하며 장성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평범한 시골 냇가인 황룡강 둔치에서 개구쟁이처럼 목욕하고 첨벙대던 곳이 지금은 문명의 발상지처럼 아름다운 꽃강으로 변한 것을 보면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납니다. 장성 지도가 새로 만들어진 것이죠. 예부터 치산치수를 잘하여 백성을 잘 살게 만들면 성군이란 말을 들었는데 이처럼 획기적인 장성 변화를 이끌어온 유두석 군수님의 발상과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 읍장의 태생지는 북하면 약수리 화룡마을이지만 어릴 적부터 체신청 공무원이었던 부친을 따라 장성읍으로 이사온 뒤 중앙초와 장성중을 나왔고 광주에서 동신고와 전남대를 졸업, 잠시 광주에서 타지 생활했으나 몸과 마음은 언제나 장성에 있었다. 때문에 자신이 뛰놀던 황룡강이 전국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나는 변천사를 지켜봤다.

“지난 7월 1일부터 장성읍장에 부임한 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읍민이 하나 되고, 아름다운 장성읍 만들기’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누가 오더라도 ‘살고 싶은 장성읍’이란 말을 듣고 싶었죠.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거나 소통하기 어려워 ‘읍민 하나 되기’는 불가능했지만 시가지 정비나 소공원 가꾸기, 마을 안길 정비 등 아름답고 깨끗한 시가지 만들기에 전념해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읍면 여러분의 성원 덕택입니다. 행여라도 부족한 점이나 서운한 과정이 있었다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31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내고 보니 모든 순간이 너무 행복이었고 자랑스러웠던 날들이었다고 회고했다.

2001년 황룡면 총무계장으로 재직할 때, 의례적이던 황룡면민의 날 행사를 발상을 전환하여 황룡강 둔치에서 면민이 하나되는 성대한 행사로 치름으로써 면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일 등이 추억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퇴임 뒤 앞으로 특별한 구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인생은 단 한번 뿐인 축제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자유와 여유, 그리고 새로운 삶에 도전해볼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공직에 얽매어 있던 나와는 좀 다른 인생시간표를 짜서 새 세상의 주인공 역할을 해볼 생각입니다”라고 자유인의 길을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내면의 박종호를 찾아 여유있는 삶을 그려보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공직자로서 1년의 공로연수 기간이 남아있는 만큼 장성을 중심으로 지역발전을 고대하며 조용히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박 읍장은 성실성을 인정받아 1년 전 전국 최우수공무원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남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공직 후배들에게는 “열심히 하면 반드시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노력하지 않고 성과나 대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비정상이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며 아름다운 훈계를 남겼다./백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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