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음수사원(飮水思源), 물 마실 때도 근원을 생각하라.
[편집국 칼럼] 음수사원(飮水思源), 물 마실 때도 근원을 생각하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2.07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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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나라가 망하고 새 왕조가 세워지던 위진남북조(서기 386~589) 시대.

남조의 양나라에 유신(庾信)이라는 신하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북조의 서위 나라에 사신으로 파견 간다. 그런데 도중에 서위가 양나라를 기습 공격하여 양나라가 멸망한다. 유신은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 재능을 알아본 서위의 황제가 만류하여 30년 간이나 장안에 반강제로 억류되어 귀국하지 못하게 된다. 황제의 배려로 어렵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멸망한 나라의 신하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가 남긴 유명한 시가 징조곡(徵調曲)이다. 그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낙기실자 사기수(落其實者 思其樹)

음기류자 회기원(飮其流者 懷其源)

‘그 열매를 따는 사람은 그 근본인 나무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하고, 그 물을 마시려는 사람은 그 물이 흘러온 근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줄여서 낙실사수 음수사원(落實思樹 飮水思源)이라 한다.

조국은 멸망해 없어졌는데 타국의 수도 장안에 억류되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신하가 자신의 신세를 탓하며 이렇게 읊었다. 이 말에서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이란 말도 나왔다. ‘무릇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이 오는 근원을 생각하고 그 우물을 판 사람의 뜻을 생각하며 마셔라’는 교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수많은 인연의 날줄과 씨줄의 교감으로 살아간다.

출세할 때도, 돈을 벌 때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멀리는 조상과 가문의 뿌리로부터 부모와 가족의 힘, 동료 지인들의 조력으로 성장하고 빛을 발하게 된다. 그 바탕에는 사회라는 거대한 경기장이 있다. 이 곳에서 때로는 동지를 뛰어넘어 출세가도를 달리고, 뛰어난 경영수완으로 상대 회사를 압도하며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저 위에서 살펴본다면 상대를 죽이며 내가 살고, 약자를 무릎 꿇게 만들어 우두머리가 되는 동물의 세계와 한치도 다르지 않다. 경쟁을 본질로 하는 인간사회가 그러하니 다른 해석이 있을 리 없다.

세상이 이렇게 약육강식으로 얽매이다 보니 보통 사람들이 내 존재의 근원이 어디인 지 망각하고 살아간다. 나만 보일 뿐 주변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출세가 오로지 그의 능력의 산물인 것으로 착각한다.

나의 성공을 뒷받침해 준 주변 존재에 대해서는 ‘들러리’로 당연시하는 게 기본이 됐다. 이런 세상에는 ‘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만 살아있다. 타인의 존재나 배려는 필요없는 단어가 됐다.

‘네가 살아남아야 세상이 존재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속칭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이다. 홀로 우뚝 선다는 독불장군의 독존(獨存)이 있을 뿐, 부처님의 지엄한 가르침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온데간데 없다.

경전에 따르면, 붓다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자마자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곧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인류 4대 성인의 한 분인 부처님은 왜 그렇게 ‘천상천하, 즉 우주에서 나만이 홀로 높은 존재’라고 선언했을까?

불교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노력에 의해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곧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의미다. 유아독존은 석가만이 아니라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의 존귀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지엄한 인간 존엄성의 선언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세상 모든 존재에는 그 이유와 가치들이 엄존한다. 이유 없는 것은 없다. 홀로라는 것도 없다. 주변 없이 홀로 우뚝 선 경우를 보았는가?

그래서 서양에서는 유아기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말이 Thank you라고 한다. 그 다음이 I’m sorry, 그 다음이 Excuse me이다.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단어부터 인간은 타인의 도움과 더불어 성장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타인의 존재와 그들의 도움이 있었다. 다른 존재들의 산물이 바로 나일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소중한 단어는 무엇일까?

주변 존재에 감사함을 전하며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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