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절영지연(絶纓之宴)...부하의 실수에 관대하라
[편집국 칼럼] 절영지연(絶纓之宴)...부하의 실수에 관대하라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2.21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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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나라 장왕이 난을 평정한 뒤 공을 세운 장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 아끼던 애첩 총희로 하여금 옆에서 시중을 들도록 했다. 밤이 늦도록 주연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이 때 총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그녀의 가슴을 더듬으며 희롱했던 것이다. 놀란 총희는 그 장수의 갓끈을 잡아 뜯고는 장왕에게 울며 호소했다.

“대왕, 어떤 장수가 저를 희롱했나이다. 속히 촛불을 켜 갓끈이 없는 자를 잡아주십시오!”

이 때 장왕이 화를 내는 대신 하령했다.

“불을 켜지 마라. 오늘은 경들이 과인과 함께 즐겁게 술을 마시는 날이다. 지금 모두 갓끈을 끊어라. 갓끈을 끊지 않는 자는 이 자리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

장수들이 모두 갓끈을 끊고 나자 촛불을 다시 켜고 뒤 술을 마셨다.

세월이 흘러 3년 뒤 초나라가 중원의 패자인 진(晉)나라와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장왕이 지휘하는 군대가 함정에 빠져 크게 고전하고 있을 때, 한 장수가 선봉에 나서 죽기를 무릅쓰고 장왕을 구해 낸 뒤 전세를 가다듬어 초나라가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장왕이 그 공을 치하하기 위해 장수를 불러 물었다.

“과인은 평소 그대를 특별히 잘 대우해준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그토록 죽기를 무릅쓰고 싸운 것인가?”

그러자 그 장수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신은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갓끈을 뜯긴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애첩을 희롱한 죄는 죽어 마땅했습니다. 그때 대왕의 온정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목숨을 바쳐 대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부하의 잘못을 관용으로 대한 장왕의 리더십은 결국 자신을 죽음에서 건지는 보상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갓끈을 끊고 연회를 즐긴다’는 절영지연(絶纓之宴)이다.

관용의 법칙은 전쟁터에서 더 확실히 나타난다.

전쟁에서 패배한 장수를 엄벌에 처한다면 전쟁이 확실히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전쟁은 어떤 장수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특징이다. 그런데 패배한 장수를 가혹하게 다루면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서도 승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게 아니라 오직 패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대담하게 작전을 짜고 용맹하게 전투를 수행하기보다 방어적인 작전과 소극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게 된다. 더군다나 패배할 위기에 놓이면 적에게 항복하는 일도 속출하게 된다. 패장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능한 리더일수록 부하의 실패에 관대하다는 것은 서양의 마키아벨리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는 로마제국이 주변 나라와 전쟁에서 숱하게 패배했음에도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을 이렇게 밝힌다.

“로마는 군대의 지휘자를 처벌하는데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 자비와 동정을 베풀었다. 장군이 저지른 죄가 악의에 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을 인간적으로 처벌했다. 또한 무능에 의한 경우에는 전혀 처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상이나 명예를 수여받은 적도 있었다. 이런 정책은 현명하게 채택된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군대를 통솔하는 장수가 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패배 이후 등의) 외부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기꺼이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수가 불안한 미래 때문에 과감하게 작전을 짜고 총력을 다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흉노열전>에서 한 무제(漢 武帝)가 패배한 장수에게 책임을 물어 가혹하게 처벌하면서도 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제의 장수가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흉노에게 투항하자 고향에 남아있는 그의 가족을 몰살했다. 뿐만 아니라 몰살 소식을 알려준 이들까지 색출해 처벌했다. 그 결과 무제 때는 적군에게 투항하는 일들이 빈번했다.

아시아 동서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를 건설하고 한 번도 재패해 보지 못한 흉노를 정벌하고 고조선까지 멸망에 이르게 하여 최대의 대제국을 건설한 난세의 통치자 한 무제.

그도 처음에는 부지런한 황제였으나 마침내 해이해지고 신하들의 간곡한 진언을 묵살한 채 끝내 사치와 향락에 빠져 ‘가장 닮지 말아야 할 군주’로 남았다.

그의 통치 시대를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온 백성이 유랑민이 되고 그 절반은 죽었으며, 풍년이 들어도 기아를 면치 못해 서로 아이를 바꾸어 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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