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동생을 향한 왕의 분노
[편집국 칼럼] 동생을 향한 왕의 분노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4.04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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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거라 저 용상은 괴물이다. 저 괴물이 우리 가문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피의 군주로 등극하는 ‘태종 이방원’의 드라마가 상종가다.
그 인기의 정점에는 지존의 자리인 용상을 지키려는 자와 노리는 자의 쟁투가 숨어있다. 
어느 시대나, 어느 국가에서나, 어느 조직에서나 권력은 생성되고 그 권력에 대한 쟁탈전이 치열했다. 
이 권좌를 노리는 칼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로든 용서가 안되고 처절했다. 
심지어 3족을 멸했다. 드라마에서 이방원은 이복 형제간, 친 형제간, 부왕과 부자지간, 그리고 부부간에 걸쳐 용상을 노리는 극한 대결이 숨을 죽이게 만든다.   
마침내 왕은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오직 하나인 용상을 노리며 형제간에 피 비린내 나는 살육을 마다않는 친동생(이방원)에게 왕(이방과)이 묻는다.
“싸움은 끝났느냐?”
“예, 제가 이겼습니다.”
“허면, 방간이는 어쨌으냐, 너의 형을 죽였느냐”
“죽일 겁니다. 허나 그 전에 전하부터 없앨 겁니다. 제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베어버리고 피의 군주로 등극할 겁니다.”
“그래, 아주 볼만하겠구나”
“예, 장관일 겁니다. 미치광이 군왕을 맞이한 백성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춤을 출 겁니다. 도성에서 불어난 붉은 강물이 온 강토를 적시며 흘러나갈 겁니다.”
“그렇다면 나를 베거라, 뭘 망설이느냐, 어서 베라, 어서!”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왕인 형을 먼저 죽이겠다는 동생과 사이에 욕망의 칼춤이 난무한다. 혈육으로 태어난 형제에 그만 선을 긋고 칼부림을 벌이지만 형은 끝내 동생을 죽이지 못한다. 
몇 년 전, 형은 그 아우와 대립하면서 ‘더 이상 네가 왕위를 탐낸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너와 형제간의 관계도 끝이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형제 관계를 이렇게 끊어줘서 말입니다~’라고. 
아우는 지존무상의 용상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았다. 천하의 주인은 둘이 될 수 없었다. 나 아니면 안되는 것이었다. 오르려는 모든 이를 없애야만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용상이 괴물인 이유였다. 
태조 이성계가 세자로 책봉한 이복 형제인 방석과 방번을 죽인 1차 왕자의 난을 치른 지 2년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친 형제간에 피비린내 나는 2차 왕자의 난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조선의 2대 왕 정종(이방과). 그는 지긋지긋한 혈육간의 싸움을 혐오하며 끝내 왕의 자리를 내놓는다. 
“방원아, 정신 차리거라. 아무리 미칠 것 같아도 이를 악물고 버티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사람으로 남거라. 인간이거라... 이제 네가 저 용상에 안거라. 더는 형제를 잃고 싶지 않다. 조심하거라. 저 용상은 괴물이다. 저 괴물이 우리 가문을 갈갈이 찢어 놓았다. 형이 아우를 죽이게 만들고 자식이 아버지를 내쫓게 만들었다. 두 어머님께서도 지금 무덤 속에서 통곡하고 계실 거다. 
이제 우리 가문은 끝났다. 그리고 저 괴물만 남았다. 이제 네가 맡아다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부탁한다.”
용상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정종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왕위를 이방원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한다. 
서기 1400년, 정종은 등극한 지 2년 만에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한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뒤 왕위를 내려놓는다. 군부를 비롯한 모든 실권이 이미 아우에게 넘어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의 군주,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은 이렇게 등극한다.
사극을 보며 ‘아, 그때도 그랬던가’라고 되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자고로 인간이 무리를 이루며 살 때부터 권력은 끝없이 생멸투쟁을 반복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괴물은 지금 우리 곁에서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혹은 국무총리, 도지사, 군수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에 이르기까지 ‘권력’이란 가면을 쓰고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만 주문하고 싶다.
어차피 존재하는 괴물이라면 좀 더 인간적인 가면을 쓴 괴물이기를 바란다. 쇠로 만든 낯가죽의 철면피가 아니라 인간에 가까운 모습이기를 기대한다. 언젠가 권력을 내려놓는 날, 허무한 괴물 옷을 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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