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선택 앞에서..."뭣이 중헌디, 뭣이 중하냐고~"
[편집국 칼럼] 선택 앞에서..."뭣이 중헌디, 뭣이 중하냐고~"
  • 장성투데이
  • 승인 2022.05.16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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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민주당 공천심사가 있기 전에는 취재 때문에 여러 번 통화했으나 공천에서 예기치 않게 탈락한 뒤에 얼마나 상심했을까 생각하며 못했던 터였다.

“선거요? 어쩔 것입니까, 이미 지나간 일인데 잊어야죠. 이 기회에 제 자신을 더 깊이 돌아보고 있습니다. 전화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예상과 달리 의외로 담담한 음성에 내심 놀랐다. 공천 경쟁이 있을 무렵, 많은 사람들이 무난히 공천장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던 후보였기에 너무 뜻밖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놀란 것은 실패가 주는 성찰의 교훈을 태산처럼 느끼고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4년 마다, 혹은 2년 사이로 선거가 치러지는데 좀 더 성숙해 가는 경쟁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더니 “그러면 좋겠지만 선거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 답을 주었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해석이었다. 마치 경지에 오른 달인의 마음가짐이었다.

승자와 패자로 뚜렷이 구분되는 선거는 현실 세계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분수령이자 경계선이다. 가문의 영광으로 가는 절대선이기도 하고 패가망신으로 가는 절대악이기도 하다. 무수한 별들이 자석처럼 달려들었다가 선택의 그날, 우수수 낙하하곤 한다.

그런 과정을 몇 차례씩 반복하며 경험해본 사람들은 그 추락의 깊은 골짜기가 얼마나 깊은지, 크레바스의 틈새가 얼마나 차가운 암흑벽 사이의 얼음장인지, 그 뒤에 다시 그 능선을 기어올라온다는 것이 얼마나 죽기보다 힘든 고통인지 절감하리라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선거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위치에 오른 분들에게 언제나 경의를 표한다.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분들의 마음을 얻다는 것, 그것은 분명 범인의 경지를 뛰어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지방선거가 불과 보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날은 누군가에게는 영광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불면의 고통일 것이다. 그것을 깊이 생각한다면 유권자에게도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그리고 평생토록 선택을 강요받는 복잡한 여정을 살아야 한다. 인간은 잉태할 때부터 선택받으며 시작한다. 성장 과정과 사회생활의 모든 면면에서 선택의 갈림길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선택으로 시작되고 선택으로 끝난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선각자들은 갈까 말까를 결정해야 하는 선택에 대해서는 ‘가라’고 권한다. 할까 말까를 결정하는 경우에도 ‘하라’고 권한다. 말까를 선택해 망설이다가 기회를 찾지 못하고 불행해 진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설령, 갈까를 선택해 멀리 갔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돌아오면 될 일이고, 망설이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할까 말까’를 선택받는 경우엔 ‘하지 말라’고 권한다. 내가 던진 말은 상대의 뜻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나의 주장일 뿐이기 때문에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번 뱉은 말은 절대로 주어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삼가거나 안하는 것이 훨씬 이다. 특히 화가 치밀은 상태에서의 말은 절제를 잃기 쉽다. 홧김에 내 뱉은 말 뒤에 대부분 후회한다.

참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참을 인(忍)자는 칼 도(刀)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놓여 있다. 한자로 풀이하면 가슴에 칼을 얹고 있다는 뜻이다. 가만히 누워 있는데 시퍼런 칼이 내 가슴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가슴 위에 놓이 칼에 찔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참지 못하는 자가 먼저 당하거나 피해가 간다는 것이 참을 인(忍)자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이다. ‘참을 인 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을 깊이 새길 줄 알아야 한다.

선거에 가장 악질적이면서도 널리 남발되는 것이 상대측 허물을 퍼트리는 일이다.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내 입맛에 맞게 각색하여 퍼트리는 일은 사회를 파괴하는 악성 바이러스다.

나는 쉽게 던지는 말이지만 그 말은 수천 개의 파동을 일으키며 누군가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

소문의 주인공이 ‘나’라면?

여러분은 소문을 어떻게 이어받고 던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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