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베니싱 스프레이처럼...조력자들이여, 거기까지여야 한다”
[편집국 칼럼] “베니싱 스프레이처럼...조력자들이여, 거기까지여야 한다”
  • 장성투데이
  • 승인 2022.06.13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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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에서 심판이 부지런히 뛰어 다니다가 반칙이 발생할 때 허리춤에서 무언가 꺼내 프리킥 지점을 표시하며 하얀 금을 긋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잠깐 동안 선명한 흰색을 띠고 그라운드에 착색되지만 30초에서 2분 사이 금세 사라지는 특수한 스프레이다. 이것을 ‘베니싱 스프레이’라고 한다. 영어 풀이 그대로 ‘사라지는’ 스프레이라는 뜻이다. 정확한 지점을 표시, 서로 간에 분쟁을 없애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사용하는 장비다.

만약 이 스프레이 표식이 지워 지지 않고 경기 내내 유지된다면 어떨까? 축구경기장은 표식으로 뒤범벅이 되고 선수나 심판이 헷갈려 경기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치열하였던 지방선거가 끝나고 당선자들이 결정됐다.

출사표를 던질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살얼음을 걷는 살벌한 경쟁 과정을 거쳐 무수한 도전자를 물리치고 영광의 자리에 올랐다. 진정으로 축하해 마지않는다. 아울러 실패한 분들에게는 이번 참패를 교훈 삼아 분투노력하여 다음 기회에 목적하시는 바를 꼭 이루시기 기원드린다.

당선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오직 혼자의 힘만 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조력자들의 헌신이 있기 마련이다.

전략적으로 캠프에 몸담고 헌신하신 능력자 분들을 비롯해 대부대를 이끌고 와서 표를 몰아주신 분, 혹은 반대로 상대 진영에서 이탈 세력들을 이끌고 투항하신 분 등 다양한 조력자들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조력자들이여, 거기까지 끝이어야 한다. 자신이 도와 만든 권력을 위해,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왕조 국가인 우리 역사를 보면 이른바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있었다. 그 영광이 있기까지 공로의 있음과 없음, 크고 작음이 있었고 이에 따라 상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다.

어떤 사람들은 1등 공신에 올라 출세가도를 달렸고, 죽도록 노력했으나 공신서열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은 배신감으로 낙향하거나 반대파 서열에 몸을 숨기기도 했다. 이러한 공신들의 서열 작업을 잘못했을 때 그 권력자도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분야에 독보적인 귀감 사례가 바로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이다. 권력 교체기에, 그 권력 유지를 위해 태종이 남긴 리더십의 요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권력의 화신’이 아니라 ‘탁월한 리더’였다. 형제를 죽이고 정적(政敵)을 제거한 냉혈한 군주였지만, 다가올 미래 위기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둔 철저한 지도자였다. 태종은 우리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시킨 공인 정신이다.

어느 역사학자는 “태종 리더십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공(公)”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지금 충보다 효, 공보다 사가 득세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태종은 재위 기간 18년 내내 머릿속에서 공의 개념이 떠난 적이 없다.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를 왕위에서 밀어낸 것은 불효지만, 그것은 대공(大公)의 길이었다.”

태종은 국가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혈친과의 대립도 피하지 않았고, 개국 공신들을 토사구팽해 500년 조선의 경영권을 확실히 다져 놓았다. 집권에 혁혁한 공을 세운 처남 민무구·무질 형제를 비롯해 아들인 세종의 장인이었던 영의정 심온까지 처단했다. 국가 경영에 사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를 철저하게 차단한 것이다.

둘째, 정적(政敵)의 아들이라도 능력 있으면 등용하는 능력주의였다.

태종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사람을 평가해 정적의 혈친이라도 필요하면 중용했다. 조선 개국을 철저히 반대하자 선죽교에서 척살했던 정몽주의 두 아들에게 벼슬길을 열어줬고, 자신의 등극에 반대하자 목을 베었던 정도전의 아들 정진은 판서까지 올렸다. 태종이 사람을 고를 때, ‘누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 개국을 반대한 목은 이색의 자식과 문인들도 품어 안았다. 태종의 이 같은 선택은 세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 세종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이 되는 기반이 됐다.

태종에게는 어떤 사람이, 어느 자리에 적당한 지에 대해 고민이 있었을 뿐, 흔히 말하는 편 가르기, 줄 세우기, 나눠 먹기식 인사는 절대로 없었다.

600년이 흐른 지금, 크고 작은 권력들이 교체되고 있다.

길게 보면 촌각도 안 되는 4년의 교체 기간, 한 뼘도 안 되는 지방권력을 두고 부질없는 잡음이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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