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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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투데이
  • 승인 2018.05.2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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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론(志操論)을 새겨라.

조지훈은 지조론이라는 수필을 통해 식민지 시절 친일파였던 무리들이 해방 이후 과거 친일 행적에 대한 반성은커녕 도리어 정치인이 되어 당당하게 행세를 하고, 심지어 한 때 ‘지조있는’ 모습을 보이던 일부 정치지도자들마저 거리낌 없이 변절을 일삼고 있는 모습을 개탄하며 1950년대 말 독재 정권과 이들에게 빌붙어 지조나 신념도 없이 변절을 일삼는 무리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지조란 순결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라 하며 지도자를 평가하는 첫 번째 덕목이고 기준이다. 또한 현역사의 객관적 상황을 냉철히 인식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올바른 길을 판단하고 지켜 나가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정치인들에게 잘 새겨야할 덕목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와는 반대로 단순히 절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적이익을 위해 올바른 신념을 버리는 것을 변절 이라 한다.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지조를 내세우는 지조론자인가? 아님 내 이익을 위해 신념을 버리는 변절자인가?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며, 정신적인 것이다. 장사꾼이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라는 것은 옛날부터 없었던 일이지만 지도자나 교양인에게 지조가 없다면 장사꾼이나 창녀와 뭐가 다르겠는가?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 정치인보다 지사적(志士的) 품격의 정치지도자를 더 바라는 것이 국민의 총체적 바람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를 개탄(慨歎)하고 연민(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에 직전인 정치인들에게 경성(警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당을 바꿔 애교를 떨고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성명은 버젓하나 뜻 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은 수치심이 역력하다. 양심은 있어서 말이다.

자기의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이야기 그 자체가 창피한 것이 아닌가.

양가(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 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인들도 우리쯤이야 하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지조는 교양인이나 정치인들에게

생명이다.

이런 중요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自任)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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