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영화 킹메이커)의 도취된 승리자들 “우리가 대의다?”
[편집국 칼럼] (영화 킹메이커)의 도취된 승리자들 “우리가 대의다?”
  • 장성투데이
  • 승인 2022.07.04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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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 한편을 다그치며 보았다.

장성문예회관이 ‘화요일은 영화 보는 날’이라고 선전하기에 일찍 도착, 널널한 중간 좌석에서 턱을 괴고 기다렸다. <킹 메이커>란 제목이 그렇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똑바로 알려줄 것처럼 예고했기에...

바야흐로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모든 게 바뀌는 때라 그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선거판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쩌면 선거판의 어이없음과 비열함을 체감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새 지도자를 뽑는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이재명 후보를,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후보로 정하고 치열한 전투를 예고하던 2022년 1월 개봉한 영화였기에 더 구미가 당겼다.

주인공인 김대중의 영화 속 이름 김운범. 그리고 반대 진영에는 김영삼과 박정희의 분신이 등장한다. 영화 속 선거 전략가 서창대는 엄창록이란 실존 인물이다.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민의원에 출마한 김운범은 탄광의 노동자들을 대변하며 청중을 사로잡으며 당선된 뒤 고향 목포로 내려와 야당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하지만 집권당의 엄청난 벽에 부딪힌다. 혁명으로 집권한 공화당 박정희가 지배하던 시절이라 온갖 불법이 묵인되던 시기였다. 청년 정치인 김운범이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바꿉시다”를 외치며 새바람을 예고한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는 청와대를 목포로 옮기듯 장관들을 불러놓고 예산 폭탄을 약속하며 엄청난 고무신 공세와 막걸리잔치, 돈 봉투로 대세를 장악한다.

이런 위기의 김운범 선거캠프에 서창대라는 천재형 선거 전략가가 뒤에서 등장한다. 고루하고 순진한 방법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며 기막힌 전략으로 상대 쪽으로 넘어간 표를 다시 우리 쪽으로 되찾아온다. 김운범 출마 때마다 숨은 그림자처럼 배후에서 전략을 짜내 당선시키자 그에게 ‘그림자’란 별명이 붙었다.

서창대가 만든 작전 1호는 신민당원들을 공화당원으로 위장하여 집집마다 신발과 와이셔츠 등의 선물을 나눠줬다가 다음날 ‘선물이 잘못 전달 됐구만이라’하며 다시 회수하는 방식이었다. 선물을 줬다가 다시 뺏는 것처럼 비겁하고 미운 것이 없는 법이다. 공화당 완장을 찬 선거운동원들은 또 농부들이 모인 곳에서 소 똥 냄새가 펄펄 난다고 손가락질 하거나, 어르신 면전에서 가래침을 뱉는 등의 야비한 행동으로 농민의 등을 돌리게 만든다.

김운범은 정치를 통해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싶다’고 포효하고 전략가인 서창대는 그 뜻을 실현하도록 당선을 위한 전략을 풀어낸다.

하지만 둘의 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김운범은 ‘어떻게 이기느냐,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법이다’라고 대의를 역설했지만 서창대는 ‘선거는 이겨야만 대의를 이룰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대의를 향해가는 최상의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열함은 또 다른 비열을,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는 법.

선거에서 표를 얻는 방법, 상대를 이기는 방법을 터득한 서창대는 ‘이제는 그림자로만 있을 수 없다’며 민주당 공천을 꿈꾼다. 그러나 정치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국회의원 공천권은 한번쯤 넘보게 되는 야망의 언덕이다. 공천권을 잡기 위한 당내 조직원 간 암투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대선을 앞둔 1971년, 서창대가 외면당하던 위치와 입장을 간파한 공화당은 집요한 ‘그림자 포섭 공작’을 펼친다. 최고 권력 자리 옆에서 그림자 역을 벗어나 햇빛 잘 드는 자리에서 일하게 해 주겠다는 청와대의 제안은 서창대를 옭아맨다. 정의는 변색되고 지폐는 그 미끼가 된다. 처음엔 완강히 거부하던 서창대는 ‘평생을 그림자로만 살 것이냐’는 현실적 충고에 곧 자세를 고쳐 앉는다. 김운범의 정치적 대의는 서창대에게 휴지조각이었다.

마침내 서창대는 신민당 대선후보인 김운범을 떠나 공화당 박정희 캠프에서 기상천외의 전략을 도입한다. 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 떠오른 것이다. 최초로 영호남 지역감정을 유발시켜 ‘이번 경상도 정권을 만들지 못하면 영원히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논리로 인구가 많은 영남을 자극,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든다.

그리고 도취된 승리 끝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대의다”라고...

하지만 서창대가 떠난 뒤 오랜 시련과 장벽을 뚫고 1997년 김운범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다. 야비한 방법 없어도 대의는 최후에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렇게 끝났다. 총선까지 2년, 다음 지방선거까지 4년, 다음 대통령까지 5년이 남았다. 다음 영화에서는 어떤 드라마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대의가 살아있는 선거를 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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