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아시나요? 여도지죄(餘桃之罪)...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
[편집국 칼럼] 아시나요? 여도지죄(餘桃之罪)...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7.18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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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과일의 계절이다. 과일 중에도 유난히 탐스런 복숭아가 시선을 유혹한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면서 미각을 자극한다. 꽃부터 예쁘더니 열매까지 한입 베어 먹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동양에서는 복숭아와 관련된 고사성어가 많다.

복숭아꽃 흩날리던 도화원에서 형제를 맺었다는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비롯, 이상향 별천지를 일컫는 무릉도원(武陵桃源), 복숭아와 오얏이 천지간에 만발하듯이 문하생이 많다는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복숭아와 오얏은 꽃이 좋아 말하지 않아도 찾는 사람이 많아 그 나무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의 여도지죄(餘桃之罪)는 오늘날 우리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교훈이다.

전국시대의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미동(美童)이 있었다. 너무 잘 생겨서 위나라 임금 영공의 총애를 받았다. 영공이 부인을 멀리하고 미자하를 가까이할 정도였다. 벼슬은 폐대부(嬖大夫)에 올랐다. 폐(嬖:사랑할 폐)는 폐신(嬖臣), 폐첩(嬖妾) 등과 같이 아첨을 잘하여 총애를 받는다는 뜻이다.

어느 날 한 밤중에 심부름꾼이 미자하에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소식을 들은 미자하는 급한 김에 임금의 수레를 타고 궁궐을 빠져나와 어머니 병을 간호하고 돌아왔다.

당시 나랏법에 따르면 국왕의 수레를 함부로 쓰면 '월형(刖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월형은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신체 절단 형벌로, 한마디로 말해서 아킬레스건 주변을 통째로 잘라 평생 장애인으로 전락한다.

신하들은 미자하의 행동이 임금에 대한 불충 죄가 너무 크다며 나랏법에 따라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금은 죄를 묻기는커녕 “효성스럽도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허락 없이 내 수레를 타고 가면 발목이 잘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레를 타고 가다니...”라며 오히려 그를 칭찬했다.

한번은 미자하가 과수원에서 임금과 산책하다 복숭아를 하나 따서 한 입 베어 먹다가 너무 맛있자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드렸다. 이런 행동은 불경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중대한 처신이었다. 신하들은 이번에야 말로 죄를 물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금은 오히려 “나를 사랑함이 지극하구나. 맛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다 먹지 않고 나에게 주다니...”라며 오히려 흐뭇해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시들자 임금의 총애도 점점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사소한 죄를 짓자 임금이 호통 치며 “네 이놈, 너는 전날 허락도 없이 내 수레를 함부로 훔쳐 탔고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던 놈 아니냐. 고얀 놈이로구나!”라며 중한 벌을 내렸다.

눈에 쓰인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알려주는 대표적인 고사다.

한비자(韓非子)가 쓴 유세(遊說) 지침서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얘기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여도지죄(餘桃之罪)다.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임금에게 준 죄’라는 뜻이다. 비슷한 고사성어로 여도담군(餘桃啗君:啗 먹일 담)이란 말이 있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으나, 바뀐 것은 권력자인 임금의 마음이었다. 신하가 왕으로부터 사랑받을 때는 그 모든 것이 맘에 들 것이나 미워하게 될 때는 모든 것이 버림의 대상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상황이 바뀜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경우를 수 없이 본다.

여도지죄의 적용은 군신 관계뿐만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갑과 을의 입장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을 본다.

한비자는 이 고사를 평하기를 “미자하의 행동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변한 것은 군주의 마음이다. 예쁠 때는 뭔 짓을 해도 예쁘지만 눈 밖에 나면 그 행동이 다 미워지는 법이니 무슨 말을 할 때는 군주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상황 봐 가면서 해야 할 것”이라 했다.

어디에나 갑과 을은 존재한다. 을이 당장 온전하기 위해서는 갑의 눈치를 봐야한다. 하지만 영원히 갑일 수 없고, 영원히 을이란 법도 없다.

세상은 변화의 산물일 뿐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사랑도, 영원한 미움도,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영원한 권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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