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장성 남면 출신 최해자 작가, 두 번째 동시집 [별꽃 무도회] 출간
[문학기행] 장성 남면 출신 최해자 작가, 두 번째 동시집 [별꽃 무도회] 출간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8.16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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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동심은 누구나 빠져들고 싶은 원초적 본능 아닐까요?”

굴곡진 삶을 60을 지나 70대에 숙성시켜 문학으로 잉태

63세에 문학춘추로 등단, 늦깎기를 모르는 바쁜 여류작가

나이 칠순을 넘기고도 여전히 동심의 물가에서 찰랑거리고 노는 소녀가 있다. 아니, 어쩌면 끝까지 동심의 세계에서 머물고 싶고, 그 모래밭에다 시를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고 싶은 소녀일지도 모른다.

최근 동시집 <별꽃 무도회>를 펴낸 최해자(78) 작가가 그런 사람이다. 작가를 대하다 보면 “곱게 물든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명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작가는 63세에 문학춘추에 수필로, 7년 뒤 문학춘추에 동시에 당선되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때문에 남들은 ‘늦깎이 문인’ 어쩌고 하지만 결코 늦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일평생을 가정주부로, 살림꾼으로, 손주 돌보는 보모 할머니로 묻혀 살다가 어느 날 소녀이자 작가로 다시 태어난 그녀였기에 바쁠 틈조차 없었다. 생의 한가운데서 문학을 배우고 쓰고, 책으로 펴내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삶의 굴곡진 골짜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관건이겠지요”

작가가 털어놓은 삶은 찬란하고도 슬픈 행복의 연속이었다.

2남 1녀를 둔 가정주부였던 작가는 50대에 이르러 조금 쉴만한 나이가 됐으나 손주들이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자 아이 돌보는 어머니의 길로 접어든다. 약 10년 남짓 동안 할머니이면서도 어머니로서 느낀 모성애는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교사였던 남편이 투병생활 끝에 59세인 아내를 두고 별이 된 뒤, 한 차례 슬픈 파도가 밀려왔다. 한쪽 벽이 무너진 삶의 허무함이란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느낄 수 없다. 이 무렵 동생들이 주선한 유럽과 이스라엘 여행은 짝을 잃고 홀로 남은 작가에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고 새 인생을 추스르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래서 여행은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인생 추천종목이다. 이런 여행을 통해 인생은 다시 시작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 때의 시간여행은 꼬박꼬박 기행문으로 남겨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어찌 회한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인생은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받아들이며 살아왔죠. 제가 의지하고 있는 기독교가 큰 힘이 됐습니다”

그렇게 견뎌내며 60대 중반이 되자 손주들도 다 커서 제자리로 돌아가고 남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청난 삶의 무게로 다가왔다. 이때 새로운 인생의 길로 접어들게 만든 것이 바로 문학이었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틈틈이 습작하던 문학적 꿈틀거림이 나이 60에 들어서서 되살아난 것이다.

 

틈틈이 습작을 병행하던 중 2007년 문학춘추를 통해 수필로 등단했으나 2015년에 문학춘추에 다시 동시가 당선되어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 나서게 됐다. 동시 작가의 길로 들어설 때 은사인 박정식 선생님의 세심한 지도와 재능기부는 글쓰기의 채찍이자 사랑이 됐다.

“애들을 기르면서 반짝이는 눈빛을 볼 때마다 삶의 에너지가 솟는 것을 느낍니다. 동시를 쓰는 일 자체는 바로 ‘언제까지라도 그런 동심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이지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청량한 동심의 세계를 문학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을 모아 최근 한권의 책으로 엮었다. 자신의 두 번째 동시집이다.

<별꽃 무도회>

한낮 호수 위에

쏟아지는

햇살/

물결이 화들짝

금빛 치장을 하고는/

햇살 껴안고 파닥파닥

별꽃 무도회를 벌인다.

작가가 동시집의 제목으로 선택한 작품의 전부다. 거대한 세상으로 비춰지는 호수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받아 반짝이는 햇살의 향연을 이렇게 무도회로 표현해낸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전히 세상에 물들지 않는 동심이 반짝이고 있다. 누가 이 작가에게 70대 후반의 여성이라고 할 것인가.

이 밖에도 해와 달, 꽃밭과 감나무, 함박눈과 비 오는 날의 우산 등 모든 소재들이 등장하며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

고향이 장성군 남면 월정리인 작가는 최남호 전 장성군의회의장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린 시절을 보낸 장성과 황룡강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매년 장성문인들의 모임 때나 황룡강 축제 때는 어김없이 동참하며 작품을 남기고 있다.

 

<꽃강>

널따란 강변에

셀 수 없는

꽃을 심기 전에는

대대로 전설적인 이름

황룡강이라 불렀지.

이즘은 강변에

셀 수 없는

꽃들이 피어나

봄가을 노란 물결

꽃강이라 부르지.

별 볼일 없던 황룡강이 화려한 꽃강으로 되살아나는 풍경을 스토리를 담은 수채화처럼 표현하고 있다. <꽃강> 시리즈로 엮은 네 편 중 하나다. 아름다운 고향 산천, 그 속에 청정무구한 작가가 빨려 들어가 현실인지 선경인지 구분키 어려운 황홀감을 던져주고 있다.

<못 본 사이에>

오늘 할미는 / 깜짝 반가운 / 네 전화를 받았어

오랜 코로나 기간 / 못 본 사이에 / 굵어진 네 목소리

벌써 변성기? / 울 손자 잘 크고 있고만

오늘 할미 기분 / 오소소 쏟아지는 / 햇살 같았어.

온 정성을 다해 길렀던 새끼들, 세대를 뛰어넘은 할머니와 손자의 끈끈한 관계가 전화기 너머에서 묻어나온다. 어떤 계산도 필요 없는 순수한 사랑의 밀어가 시공을 초월하여 흐르고 있다.

남은 노년을 어린 아이처럼 살고 싶은 소망이란다.

작가는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한국문인협회, 문학춘추작가회, 전남여류문학회, 국제펜광주지회 회원이다. 광주문인협회 편집장, 장성문인협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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