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여인의 향기?... 여인이 권력 가까이 있으면 이렇게 패망한다.
[편집국 칼럼] 여인의 향기?... 여인이 권력 가까이 있으면 이렇게 패망한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8.29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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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진나라에 헌공이란 왕이 있었다. 그의 애첩 중에 여희라는 여인이 있었다. 젊고 예뻤던 그 애첩은 지략까지 뛰어나 나이 든 헌공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여러 후궁 중에 서열에 들 수 있는 사람은 왕자를 낳은 사람이어야 하고 그 가운데 최고는 태자를 낳는 여인이었다. 때문에 태자 자리를 다투는 싸움이 끊이질 않았고, 이미 책봉된 태자도 어떤 계략으로든 밀어내거나 죽게 만들고 자기 아들을 태자로 만들어야만 했다.

많은 첩을 거느릴 수 있는 최고 권력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은 젊은 첩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젊은 첩은 나이든 권력자에게 붙어 갖은 방법으로 기존 태자를 폐하고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 이른바 적자의 자리를 빼앗는 탈적(奪嫡)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늦게 후궁으로 들어간 여희는 아들 해제를 낳았으나 죽은 황후로부터 태어난 아들 신생이 벌써 태자로 책봉돼 있었고 다른 왕자가 8명이 있어 감히 태자는 엄두도 낼 형편이 못되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제를 헌공의 후계자로 만들고 싶었던 여희는 계책을 세운다.

어느 날 여희는 헌공에게 태자 신생이 자신을 성희롱한다고 고자질한다. 헌공이 연로하고 큰 아들 신생이 청년기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헌공은 ‘설마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지만 여희는 ‘그렇다면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시고 판단해 주세요’라며 다음날 오후에 높은 누각에 올라가 몰래 정원을 지켜봐 달라고 청한다.

여희는 꽃피는 봄날 오후 정원에 벌들이 찾아오는 것을 이용, 허리와 목 등에 꿀을 바르고 신생을 불러낸다. 신생은 갑자기 벌들이 황후의 몸에 달라붙자 그것을 쫓으려고 이리저리 만지고 얼굴의 벌을 떼어내는 등 혼돈이 일었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본 헌공은 아들을 자신의 애첩을 탐낸 몹쓸 놈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헌공은 태자를 폐하고 해제로 그 자리를 대신하려고 한다. 그러자 여희는 신하들 앞에서 통곡한다.

“태자가 오래전 확정됐고 온 천하가 알고 있는데 천첩 때문에 태자를 폐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주군께서 꼭 그러하시겠다면 천첩이 목숨을 끊겠습니다”

하지만 여희는 장막 뒤에서 음모와 계략을 멈추지 않았다. 여희는 신생에게 꿈에 돌아가신 생모가 나타났다며 어머니의 제사를 모시게 한다. 이 제사 음식에 몰래 독약을 타게 하고는 헌공과 식사 자리에서 ‘음식이 이상하다’며 개와 시종에게 먹이자 그 자리에서 둘 다 즉사한다.

결국 여희의 계략에 빠져 헌공을 희롱하고 독살시키려 했다는 모함을 받은 신생은 자살하게 된다. 해제는 여희의 계략대로 태자에 책봉되지만 그 행적이 드러나 권좌에 오르기 전에 다른 형제들에 의해 살해된다.

유명한 상옥추제(上屋抽梯: 뺄 추, 사다리 제) 즉 ‘옥상 위에 오르게 한 뒤 사다리를 없애버리다’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하게 된 교훈이다. 사마천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한국사마천학회 김영수 교수가 최근 펴낸 “중국 최고의 실용서 <삼십육계>”에 28번째로 소개된 일화다. <삼십육계>는 손자병법의 36계책을 현대 CEO들의 입맛에 맞게 엮은 경영지침서다.

이 계책에서 여희는 신생을 점점 막다른 절박한 꼭대기로 몰고 가(上屋) 꼼짝 못하게 만든 뒤 사다리를 없애(抽梯) 자살에 이르게 만든다. 이 계략은 먼저 상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누가 봐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치밀한 계책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때로는 목숨과 몸을 내놓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다음 가차 없이 상대의 퇴로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비열하지만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 뒤따르는 상책의 계책이다. 이 계책이 성공하면 그야말로 천하를 손에 움켜쥐게 된다.

어느 왕조시대나, 권력이 존재하는 한 왕비와 후궁 사이에 이러한 탈적 현상은 비일비재했다. 정치는 낮의 편전에서 뿐 아니라 밤의 내전에서도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현대라고 다를까?

며칠 전 윤석열 대통령의 사사로운 행방이 SNS에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일반인들에게 철저히 숨겨야 하는 것이 최고 권력자의 일상이다. 하물며 권력자의 밤은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장관들, 선거로 선출된 지방권력의 수장도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들이다. 권력자라면 밤과 여인의 세계에 경계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헌공의 아픈 교훈, 상옥추제를 뼈에 새겨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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