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염량세태(炎凉世態), 잘 나갈 때는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편집국 칼럼] 염량세태(炎凉世態), 잘 나갈 때는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9.26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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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면서 관계(關係) 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 사이의 믿음이 얼마만큼의 깊이인가가 관건일 것이다.

교우관계를 일컫는 고사성어에 시도지교(市道之交)란 말이 있다. 시장과 길거리에서 이뤄지는 거래처럼 이익만을 위한 교제를 의미한다.

전국시대 조나라에 염파라는 장군이 있었다. 연나라와 여러 차례 전투에서 공을 세워 높은 벼슬에 올랐다.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부귀를 누렸다. 그러나 연나라와 주변국들이 위험인물인 염파를 제거하기 위해 모함하자 조나라 왕은 속도 모르고 염파를 파면했다. 그러자 그의 집에 드나들던 많은 식객들도 모두 떠나버렸다.

그 뒤 다시 연나라가 쳐들어오자 조나라는 급하게 염파를 불러들였고, 결국 승리했다. 그 때서야 왕은 염파를 신임하여 재상 벼슬을 내렸다. 그러자 떠났던 식객들도 다시 몰려들었다.

염파가 이러한 세태를 보고 울분을 터뜨리며 내쫒으려 하자 한 식객이 나서서 말했다.

“상공께서는 세상 사람들은 왜 시장가는 길목으로 몰려든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공께서 권세가 있으면 따르고 없어지면 떠나는 게 이치입니다. 天下以市道之交 君有勢我則從軍 君無勢我則去”

세상 이치가 그럴 뿐이니 내쫒으려 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염파는 깊이 깨달았다.

비슷한 말로 '염량세태(炎凉世態)'란 말이 있다. 불꽃같이 뜨거웠다가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세태라는 뜻이다. 염량세태(炎 더울 염, 凉 서늘할 량)란 권세가 있을 때는 모든 것을 다할 것처럼 아부하고, 몰락하면 가차없이 외면하는 야박한 세상인심을 일컫는다.

잘 나갈 때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지만, 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통상적으로 인용되는 문구가 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먹던 밥 수저 놓고 달려가는데, 정승이 죽으면 먹던 밥 다 먹고 간다"라는 속담이다.

사람처럼 간사한 동물이 없다.

그래서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라고 한다. ‘모진 바람이 불고 지나간 뒤에라야 풀의 강함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사도 어렵고 위험한 처지를 겪어봐야 인간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린 세한도(歲寒圖)에 새겨둔 공자의 말씀을 다시 상기해 볼만 하다.

‘歲寒然後 (세한연후) 知松柏之後彫也 (지송백지후조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푸르게 버티고 있음을 안다.

냉혹한 현대인들은 이익 앞에서 신의도 없고 동지도 없다. 세상은 이익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배신은 역사가 현대에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배신은 오래된 역사다. 아마도 소유와 사유 재산의 개념이 생긴 뒤부터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역사를 탓할 수만은 없다는 풀이다.

우리 격언에도 ‘술과 음식으로 사귄 친구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세력과 이익으로 사귄 친구는 한 해를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을 판단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통해 구분하기도 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관상학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인간의 속내를 알 수 있으랴. 가장 가까운 정답이 있다면 오래 사귀어 봐야 한다는 것뿐이다.

대간사충(大姦似忠)이란 말도 있다. 크게 간사한 사람은 아첨하는 수단이 아주 교묘하여 크게 충성된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굵은 동아줄을 잡기 위해 대간(大姦)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아무리 더우면 모이고 추우면 멀어지는 염량세태 세상사라지만 최소한의 격을 갖춘 사람이기를 바란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바로 어제까지는 다른 나라에서 산 사람처럼, 하루아침에 자세를 바꿔 날뛰는 사람들이 많기에 발원(發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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