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효 세 번째 개인전, 장성공공도서관 갤러리 ‘뜨락’서 27일까지
김진효 세 번째 개인전, 장성공공도서관 갤러리 ‘뜨락’서 27일까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11.14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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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간호사...그러나 청춘의 열정을 캔버스에 담아 상상을 꿈꾸는 작가

현대인의 애증을 화폭에...‘나는 누구인가’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장성공공도서관 2층 갤러리 ‘뜨락’에서 열리는 초대전의 출품작 앞에선 김진효 작가.
그의 작품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독한 사랑과 처절한 외면 등이 녹아있어 존재의 이유를 묻게 한다.

 

캔버스라는 호수에 자유롭게 상상의 노를 젓는 한 화가가 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그녀는 어부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것도 생로병사에 시달리며, 삶의 끈을 놓치지 않고 생명을 갈망하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였다. 그런 그녀가 장성에서 초대전을 열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장성공공도서관이 2층 갤러리 ‘뜨락’에서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1월의 초대전으로 마련한 김진효(52) 화가의 “침묵”이라는 전시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전시회는 11월 27일까지다.

김 작가의 화폭에는 만물상회보다 더 다양한 시대적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윤회와 업보로 연결되어 때로는 희망과 절망으로, 때로는 자유와 고독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진 채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를 작품 속으로 불러들인다.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군상들은 그냥 얼굴을 내밀고 뻔히 응시하듯 하다가도 한쪽 눈을 감고 외면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무거운 등을 내밀며 삶의 뒤편으로 내빼고, 어떤 사람은 이러한 세상을 염탐하듯 숨어 지켜본다. 일그러진 영웅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뿐만 아니다. 캔버스가 온통 희뿌연 유리창이 되어 두 연인의 열렬한 포옹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 로즈와 잭이 자동차 안에서 낭만을 불태우며 포옹으로 뜨거운 김을 서리게 만든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공간은 각각 독립적 존재인 너와 내가 어쩌면 둘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인연을 예감케 하고 있다.

김 작가는 캔버스라는 자기만의 우주 속에 해와 달, 고독과 침묵, 자유와 구속, 멸시와 우정 등 모든 사유의 대상을 불러들여 훌륭하게 예술작품으로 소화해 내고 있다. 그녀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간호사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김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수업을 받지도 않았다. 그냥 그림이 좋아 시작했고 홀로 그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어렸을 때 친구가 다니는 화실을 호기심에서 다녀봤을 정도다. 그런데 친구 따라 그린 그림을 보고 선생님이 칭찬을 해줘서 기뻤던 기억이 전부였다. 직업을 간호사로 선택했지만 그녀의 마음 한 구석엔 항상 젊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선수 수준급의 스키를 비롯, 윈드서핑, 스쿼시, 스포츠크라이밍 등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것이 입증한다.

김 작가는 보성 태생으로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간호사 경력은 광주보훈병원에서 28년 째인데 스키와 화가의 길을 병행한 것은 23년 째이다. 화가의 길은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아련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했다. 평범한 간호사로 살던 그녀에게 어느날 화실의 추억이 떠올랐고 캔버스 위의 물감 냄새가 진하게 심장을 자극했다.

김 작가는 틈틈이 붓을 잡은 작품들을 모아 지금까지 세 번의 개인전 열었으며 전남도전과 광주시전 등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얼굴을 내밀었고 동호회를 통해 활동 무대를 넓히기도 했다.

그 동안의 작업들은 풍경과 꽃을 소재로 한 인상주의적 시골 풍경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 아닌, 조용하고 한가로운 사색의 공간을 화폭에 옮겨 담았다. 여름보다는 겨울을, 번창한 나무보다 앙상하고 비틀어진 것들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따뜻한 세계를 갈망하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해왔다.

그러다가 올해부터는 그동안 안주해온 풍경 위주의 작품으로는 내면의 신음 소리를 다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존재해온 자신과 또 다른 자신을 찾아나선 것이다. 마침내 자연 풍광에서 훌훌 벗어나 비구상 계열의 반추상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면서 내면적 사유의 시간들을 화폭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성숙해지는 환골탈태라고 할까.

타인을 위한 존재라는 직업의 굴레를 깨고 더 큰 우주를 향해 날개짓하는 작품들을 잉태했다. 이번 전시는 그런 변화와 새 출발의 신호탄이다.

“어떤 틀과 형식에 얽매여 스스로를 구속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이번 출품작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사람들 사이의 애정과 외면, 고독과 그 고독으로부터의 탈피, 사랑과 생명의 탄생 등 모든 것을 담아보려 합니다”

김 작가는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50이 넘으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 변화의 끝자락은 어디일까 기대된다.

김 작가는 신경림 시인의 ‘낙타’라는 시를 참 좋아한다고 말한다. 이유를 물어 무엇하랴.

낙타에게는 사막이라는 험난한 길이 전제된다. 그리고 그를 모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모래뿐인 세상, 그 위에 어리석은 존재인 내가 있으며 나와 동행해 줄 길동무 낙타가 있다. 슬픔도 기쁨도 까맣게 잊고 떠나가는 낙타는 외로울 것 같지만 동행이 있어 외롭지 않으리라.

사유의 캔버스에서 낙타를 모는 김 작가는 ‘별과 달과 해와 모래 밖에 본 일 없는’ 가장 가엾은 사람과 동행하는 길동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낙타 -신경림- ​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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