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장성문학상 수상자 '변재섭 시인'
'2022' 장성문학상 수상자 '변재섭 시인'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11.2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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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물을 경외하고 노래하며, 물처럼 살려합니다"

수몰민 한 덮고 안평에 귀향...10년 동안 3권의 시집 출간
캠핑카를 구입해 부부동반 주말여행을 즐긴다는 변재섭 시인은 선유도를 시작으로 서해안을 탐방할 예정이다.
캠핑카를 구입해 부부동반 주말여행을 즐긴다는 변재섭 시인은 선유도를 시작으로 서해안을 탐방할 예정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말 못할 설움이 있을 법하다. 마음으로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그곳을 오가며 부여잡고 싶을텐데 상상만으로 그쳐야하니까 말이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사람들이 그렇고, 개발공사로 고향을 통째로 땅이나 물에 묻어버린 사람들이 그렇다.

시인 변재섭(64) 선생은 이름하여 수몰민이다. 북상면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나 장성댐을 건설하면서 북상이란 지명과 마을을 통째로 물에 묻어둔 실향민이 됐다.

그래서 시인은 물을 한없이 경외하고 노래한다. 그의 세 번째 시집 ⌜강물의 자궁⌟은 그런 시인의 속내를 발가벗고 보여준다. 시인의 앞 뒤 모습, 좌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속살까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원제목의 시를 보자.

<강물의 자궁>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다.

저 물길을 더듬어 가면 주저 없이 스며드는 지천을 만나고 지천을 더듬어 가면 시내를 만나고 개울을 만나고 도랑을 만나고 그 끝에서 딱 마주서는 나무 한 그루

그 한 그루가 숲이 되고 수천, 수만의 아니 헤아릴 수 없는 나무로부터 한점 티 없이 맑은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중략)

너, 한 그루 나무여

강물의 위대한 자궁이여.

생명의 본질에 대해 파고 드는 고뇌에 찬 철학자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그 외침의 한 가운데 바로 물이 있다. 물은 만유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래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원의 존재다.

변 시인은 물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물에서 배워야 한다. 물은 한없이 낮은 곳으로만 행한다. 그리하여 끝내 목적지인 바다에 닿는다. 뿐만 아니다. 엄청난 위압감과 무게로 물에 저항하고 있는 바위에게 하나의 원망도 않고 휘감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모난 것들까지 감싸 안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물처럼 사는 법 아닐까?”

시인은 우리들의 삶에서 꼭 적용해야할 가치규범으로 물처럼 사는 법을 강조한다. 다 이해할만한 관계나 벗들 사이에서도 사소한 오해의 간극이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절벽을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심사를 읊은 시가 바로 <전정(剪定)>이라는 시다. 균형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지치기를 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햇볕도 잘 들고 열매도 잘 열리는 세상사 이치를 보여준다. 이 시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불균형적인 요소들은 잘리우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나는 이기적이어서

마음에 걸리는 모든 가지와 우듬지의 높이는 물론

밑동까지도 가위와 톱으로 잘라낼 것이다

나와 모란꽃과 함박꽃의 하늘을 위하여

내 정원의 평화를 위하여/

 

변 시인은 가지치기하는 농부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영상들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포착, 작가의 내면을 삽입시키는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변 시인의 시에서는 동시대의 여러 군상들이 등장한다.

고단한 삶을 이끌고 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가 첫째다. 흔히 만나는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다. 그의 작품에는 아픔과 한이 들어있는가 하면 웃음 가득한 이웃집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때로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시린 과거사가 들어있기도 한다. 시인은 이런 군상들의 삶을 통해 잘못된 권력에 어금니를 물고 저항하는 위대한 소시민의 가치를 그려내고 있다.

변 시인의 시에는 수많은 자연들이 함께 뛰놀고 있다.

황룡강가에 피라미를 잡아먹는 쇠제비갈매기를 비롯, 무리지어 군무를 추는 참새 떼, 살구꽃과 나비, 백로 등 우리 주변의 생물들이 등장하고 그것들이 시 속에서 되살아난다.

하지만 시인이 가장 옹골진 외침은 자화상적인 작품 <나는 태생이 불온하였다>라는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창공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

똬리 틀고 들어앉아

양들을 잡아먹고 집비둘기를 잡아먹고

아가리 붉은 아가리

항상 칼을 물고 있었다.

바람은 비릿하여 파리한 달을 품고

하늘 한 뼘 우러러 보지 않았다

늑대의 눈빛만 빛났다/

 

변 시인은 이 시에서 세상에 모순되고 부조리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불온한 태생’의 자신을 빗대어 말한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글들로만 가득한 한량같은 시인의 주변은 모든 것이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비장함을 숨겨두고 있다. 시인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존재로서, 참된 인간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바람을 일으키는 일획의 행동만이 있었다/는 표현은 시인의 ‘행동하는 양심’의 깃발을 든 장면이다. 그럼으로써 ‘칼이 밥이 되는 세상’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포효하고 있다./백형모 기자

변재섭은 누구?

캠핑카 구입, 차박 여행으로 또다른 재미 찾기

변 시인은 북상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자랐으나 장성댐 건설로 마을이 통째로 수몰됐다. 고교시절 광주에서 국어 교과서에 실린 <봄 비>의 저자 이수복 시인을 비롯, 주기운 선생을 만나 감화를 받으며 문학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사회인이 되어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1987년 <시나라> 동인지에 <변비> 등 5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만 50세에 이른 2008년 월간 <문학바탕>에 신인상을 수상하여 깊이를 더해갔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더 큰 호흡을 거듭한 뒤 2019년에 계간 <시와사람>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한국문협과 한국카톨릭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2004년에 장성읍 안평으로 귀향해 장성문인협회에서도 고향문단의 지킴이 역할을 다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2012년 <동그라미>, 2017년 <사랑에도 안개 자욱한 날이 있다>, 2019년 <강물의 자궁>을 출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변 시인은 맘 먹고 구입한 캠핑카로 달포 전부터 주말을 이용, 자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똑같은 하늘 아래지만 낯선 곳에서 만나는 또다른 세상의 재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서해안부티 시작했다. 선유도와 부안 해변가를 더듬으며 내려오고 있다. 영광, 함평, 신안 등등 일정이 줄줄이 머릿속에 정리돼있다. 모든 것을 노트에 담는다. 시상이 풍요로울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차박 여행이 아직은 어슬픈데 곧 익숙해지겠지요? 지금까지는 내 집이 우주였는데 이제부터는 하늘이 내집이 됐습니다. 하하하”

새벽 안개를 걷고 일어나 새소리로 정신을 가다듬는다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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