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망년교(忘年交)를 아십니까?
[편집국 칼럼] 망년교(忘年交)를 아십니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12.05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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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달력이 펼쳐졌다. 지나간 11장의 달력이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1장도 휙 지나갈지 모른다.

연말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망년회(忘年會)다. 잊을 망자를 써서 한해의 아쉬움을 모두 잊어버리자는 뜻일 테다.

그런데 자주 쓰이지 않는 한자어 가운데 망년교(忘年交)라는 말이 있다. 망년우(忘年友)라고도 한다. 무슨 뜻일까?

한자어를 제대로 쓴다면 망년지교(忘年之交)다. 나이를 잊는 교유란 뜻이다. 즉 나이 차이를 잊을 만큼 허물없이 사귀는 벗을 의미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를 말할까?

여기 망년교의 표상이 되는 우리 선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윤진 장군과 수은 강항 선생의 19년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 이야기다.

장성이 탯자리인 윤진(1548~1597) 장군은 임진왜란 때 남문창의에 참여하여 입암산성 수축을 조정에 건의하고 산성을 정비하여 정유재란을 맞아 의병들과 함께 산성을 지키다 순절한 무신이다.

영광이 고향인 수은 강항(1567~1618) 선생은 22세에 진사에 올랐으나, 26세에 임진왜란을 맞아 영광에서 의병운동을 일으켰고 2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공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다 31세에 휴가를 얻어 고향에 있다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3년 동안 억류생활 한 뒤 돌아온다.

두 분 모두 임진 정유재란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던 분이다.

윤진 장군은 1597년 8월 왜적이 남원성을 짓밟고 서남쪽으로 내려오자 전라도의 관문인 입암산성을 지키기 위해 백여 명의 의병을 모았으나 왜적이 눈앞에 들이닥치자 병사들은 겁에 질려 모두 도망치고 관리들도 피신하기에 바빴다.

윤진의 친구들은 “자네는 성을 쌓으라는 명을 받았을 뿐, 성을 지키라는 명은 받지 않았는데 왜 피난을 가지 않는가?”라며 빨리 피신토록 종용했다. 그러자 윤진은 “조정이 이 성을 쌓을 때는 오늘을 대비하기 위함인데 신하된 도리로서 어찌 목숨을 위한단 말인가? 이 성은 내가 죽을 땅이요, 오늘은 내가 죽을 날이다”라며 몇 안 되는 의병들과 성을 지키다 중과부적으로 장렬히 순절했다.

윤진의 아내 권씨 부인은 남편이 전사했다는 말을 듣자 적에게 몸을 더럽힐 수 없다며 패도를 꺼내 자결했다. 윤진의 아들 윤운구는 17세였으나 아버지를 도와 싸우다 칼에 찔려 절벽으로 떨어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권씨 부인은 당대 유명한 시인인 권필의 누님이었다. 권필은 윤운구와 함께 윤진의 시신을 열흘 만에 수풀 속에서 찾아내어 겨우 장사 지냈다.

윤진과 강항은 친한 벗이었다. 나이는 윤진이 19살이나 많았다. 하지만 나이를 초월하여 벗으로 망년교를 나누었다. 강항은 윤진의 처남인 권필과도 친구였다. 둘의 만남은 공무로 진원현을 지나던 강항이 인근 마을에 권필이 와있다는 소문을 듣고 빗속에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처음 만난 날 하룻밤을 시주(詩酒)로 세우며 절친이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윤진은 입암산성을 지키다 순절했고 강항은 남원성 전투에 군량미를 운송하던 도중 성이 함락되자 이순신 장군 휘하로 가려다 왜적에게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의 운명이 정유재란으로 인해 생사가 엇갈린다.

강항이 3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기적적으로 생환하자 권필은 누구보다 기뻐하며 영광 불갑까지 찾아가서 위로했다. 강항은 권필에게서 절친이었던 윤진의 순절 소식을 듣자 그의 아들 윤운구를 문하로 받아들였다. 윤운구는 강항의 문하에서 7년 동안 숙식하며 공부하여 진사시에 합격했다. 강항과 윤운구는 열세 살 차이였다. 강항은 제자인 윤운구에게 망년교를 권하며 아버지 윤진이 자신을 대한 것처럼 벗으로 대했다. 윤진에게서 받은 망년교의 정을 그의 아들인 윤운구에게 그대로 베푼 것이다. 대를 잇는 아름다운 우정이다.

강항은 벼슬을 하면서 윤진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쳤음에도 공훈을 받지 못함을 딱하게 여겨 ‘윤진의 포상을 건의’하는 청포윤진소(請褒尹鎭訴)를 장성 유림을 대신해서 조정에 올린다. 강항은 “공이 살았을 때에는 나에게 망년교를 하였는데 이제 공의 아들 운구에게 내가 또 망년교를 하고 있구나”라며 행장을 지었다.

세대와 세월을 뛰어넘는 사람 사이 우정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말미다. 실없이 분주한 세밑 망년회 보다 세대와 교감하는 인생 망년교를 기대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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