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편지] 해우소(解憂所) 문틈의 세상
[발행인 편지] 해우소(解憂所) 문틈의 세상
  • 장성투데이
  • 승인 2022.12.19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날, 한 노스님이 길을 가다 잠시 숨을 돌리려 산길에 앉아 있는데 마침 한 젊은 스님이 지나다가 물었다.

“오는 중(僧)입니까? 가는 중(僧)입니까?”

분명 노스님을 놀리는 언사였기에 노스님의 곁에 있던 시자(侍者)가 발끈하며 언성을 높이려 했다. 노스님은 시자에게 눈짓하며 태연하게 한마디 했다.

“어 허... 나는 쉬고 있는 중이라네.”

화제의 주인공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유머로 유명한 바로 경봉(鏡峰) 스님이다.

그런데 화장실에 ‘해우소(解憂所)’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준 분이 바로 경봉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버리는 것이 바로 도를 닦는 것인데, 그런데 화장실은 근심을 버리는 곳, 그러니까 화장실이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 된다.

이처럼 사찰 화장실에 해우소라는 이름을 붙여 의미심장하게 도량의 일환으로 바꾼 분이 바로 경봉 스님이다.

6.25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당시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 조실로 있던 경봉 스님은 두 개의 나무토막에 붓으로 글자를 써서 시자에게 내밀었다.

하나는 ‘해우소(解憂所)’라고 쓰여 있고, 다른 하나에는 ‘휴급소(休急所)’라 적혀 있었다.

경봉 스님은 두 나무토막을 하나는 대변을 보는 곳에, 하나는 소변을 보는 곳에 걸라고 했다.

해우소는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요, 휴급소는 급한 곳을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다.

이후 극락선원을 찾는 수제자와 신도들 사이에 문패를 보고 설왕설래 말이 많자 경봉스님은 이렇게 얘기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급한 것이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는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화급한 일 잊어버리고 맨날 바쁘다고만 하지. 내가 소변보는 곳을 휴급소라고 한 것은 쓸데없이 바쁜 마음 그곳에서 비우면서 쉬어가라는 뜻이다.

그럼 해우소는 무슨 뜻이냐.

뱃속에 쓸데없는 것이 들어 있으면 속이 답답하고 근심 걱정이 생기지, 그것을 다 버리라는 것이야. 휴급소에 가서 급한 마음을 쉬어가고, 해우소에서 근심 걱정 버리고 가면 그것이 바로 도(道)를 닦는 거야.”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소변이 마려우면 소변부터 보아야지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소변소에서 급한 마음을 쉬어가라는 뜻으로 ‘휴급소(休急所)’라 했다.

대·소변보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될지 모르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가볍게 보이는 생리적 문제와 인생사의 여러 사안들은 동떨어진 별개의 사안일 수 없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뒤따르는 동시다발적이자, 필연적 연결 사안이다.

굳이 생리적 문제로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나 바쁜 일정과 인간관계로 인해 진정 나를 돌아볼 시간까지도 잊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월의 울타리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지 않은 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모두 같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삶으로부터 멀리 가 있는지, 아니면 가까이 있는 지, 지금의 주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 시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지긋이 눈을 감고 해우소 문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