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일본인들은 정직하다?" 대통령이 역사를 망각해도 유분수다
[편집국 칼럼] "일본인들은 정직하다?" 대통령이 역사를 망각해도 유분수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3.20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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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호 애재라!

또다시 역사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빛바랜 역사책을 다시 꺼내든다.

그리 멀지 않던, 지금으로부터 113년 전, 일제의 침략 야욕이 강토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눈썹 깊이까지 차오른 야욕으로 기차에 올라타 부산에서부터 서울과 평양을 거쳐 만주에 도착하던 일제의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학수고대하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매서운 눈썰미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토 히로부미 인상착의를 떠올리며 동양평화를 위해 권총을 꺼내들고 방아쇠를 당긴다. 입으로 동양평화를 외치던 자를 동양평화를 위해 저격한다. 그리고 세계 공통어가 된 에스페란토어로 “꼬레아 후라”와 우리말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일경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된다.

대한의군 참모 중장의 군인 신분 안중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 의사의 과거를 굳이 다시 꺼내는 이유가 있다.

안중근은 재판 도중 일본 검사로부터 심문을 받을 때, 한 치도 망설임 없이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6가지를 나열했는데 이제 다시 그 죄악을 되새겨보기 위함이다.

안중근은 이토가 대역부도한 자로서 자객을 황궁에 돌입시켜 대한제국 황후폐하를 사살했고, 황제폐하를 위협하여 강제로 조약을 맺게 했으며 한국의 땅을 억지로 팔고 사들였으며 한반도 삼천리강산을 욕심내어 일본의 것이라 선언한 죄 등을 낱낱이 열거했다. 마지막 열여섯 번째는 ‘동양 평화의 영위를 파괴하여 수많은 인종의 멸망을 면치 못하게 한 죄’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피치 못할 운명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형장에 서서 기뻐하며 “나는 대한 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 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당당한 채비를 갖췄다. 마침내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형장으로 나아가니, 나이 32세였다.

일제는 그의 시신을 돌려주면 그가 묻힌 곳이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지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시신을 건네지 않고 어딘가에 암매장,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영혼만의 애국지사로 남았다.

이제 며칠 뒤 3월 26일은 그의 순국 113주기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 가 있으면서 국빈으로 융숭한 환대를 받으며 식탐을 일삼는 한 한국 사나이가 있다. 그러면서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인들은 정직하다’고 침을 튀긴다. 그가 바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다.

일반인의 개인적 소회로 ‘일본이 아름답고, 일본인이 정직하다’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행 흔적은 그 자체가 역사다. 더구나 수천 년을 넘게 얽혀온 풀지 못한 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데 일본에 건너가자마자 관광지에 온 얼뜨기처럼 “참 정직한 사람들이네”라고 나팔을 불고 있다. 정직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한점 반성어린 사과도 없이 과거 덮기에 급급할까.

이 어찌 통탄치 않으리오.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를 배워본 사람이냐고도 묻고 싶다.

나아가 한일관계, 정치적 파트너십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냐고 묻고 싶다.

아무리 미래로 가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불과 100년도 되지 않는 통한의 침략주의 역사를 그대로 묻어두고 미래로 향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억울한 과거를 잊지 않는 민족만이 또 다른 억울함을 당하지 않을 자격이 있다.

저 차가운 만주 벌판에서 고혼이 되어 방황하고 계실 안중근 의사에게 물어 본다.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이 일본인은 정직하다는데 그 때 왜 권총으로 저격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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