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덜사는 세상 구갱 쪼께 하실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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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06.1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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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쌀 100억 판매 경이적 기록
영업은 진정성으로 승부한다는 믿어
IMF 때도 끄떡없었던 우직한 승부수
진원 선동·석전마을 양정수 이장
선동.석전마을 양정수 이장 뒤로 펼쳐진 샛노란 금계국이 핀 마을 전경이 인상적이다.
선동.석전마을 양정수 이장 뒤로 펼쳐진 샛노란 금계국이 핀 마을 전경이 인상적이다.

 

“마을화합은 제가 책임집니다!”

진원면 선적1리 선동·석전마을 양정수(66)이장은 97년 한 해에만 100억 상당의 쌀을 판매한 전남 최고의 ‘판매왕’이다.

양정수 이장은 진원농협 재직시절 농협RPC(미곡종합처리장)에서 판매부장 업무를 맡으며 91년 한 해 2억 원의 판매고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94년에는 70억이라는 경이로운 판매실적을 기록해 전국단위 농협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양 이장은 95년도 당시 부산 서면에서 지역 쌀 판매촉진행사가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지역색이 강하던 시기라 껌 하나를 사더라도 해태 껌이니 롯데 껌이니 따지며 샀던 시기에 가뜩이나 갈등의 골이 깊었던 부산에서 전라도 장성의 쌀을 팔아야 했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짐작조차 힘든 상황이었을 터다.

목청껏 떠들며 홍보를 해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데다 모두가 지쳐 갔지만 양 이장은 묵묵히 일을 수행하며 언젠가는 사람들이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양 이장은 출근하자마자 농협 마당을 쓸고 또 쓸었다고 한다. 판매가 안 되니 그렇게라도 해서 눈에 띄고 싶었다는 것. 이런 양 이장의 진실이 보였던지 해당 농협관계자가 비질하는 양 이장에 다가와 이유를 물었고 양 이장이 “쌀 판매가 여의치 않아 비질이라도 열심히 한다며 품질에는 자신 있으니 일단 맛만이라도 보시라”며 권유한 것이 자연스럽게 판매망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수령 300년이 넘은것으로 추정되는 마을 보호수. 무성한 풀로 뒤덮여 안내 표지석이 안보인다.
수령 300년이 넘은것으로 추정되는 마을 보호수. 무성한 풀로 뒤덮여 안내 표지석이 안보인다.

동료 대신 명퇴 택한 ‘의리의 사나이’

양 이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엔 아침에 출근하며 간이고 쓸개며 다 빼놓고 일한다는 각오로 임했어요. 피눈물도 흘릴 각오로 말이죠. 내가 미쳐야 산다고 생각했거든요. 정말이지 오직 목표 외에는 아무것도 안보였던 것 같아요”라고 얘기한다. 그야말로 ‘진심이면 통한다는 진리를 깨우쳐준 격’이라고.

양정수 이장은 이를 계기로 그해 진원농협 상무로 특별 승진하게 된다. 승진 이후에도 양 이장은 97년 한 해에만 매출 100억이라는 경이로운 판매실적을 올리는 등 뛰어난 영업 수완을 발휘하게 된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즈음 갑자기 밀어닥친 IMF의 모진 한파는 양 이장도 피할 수 없었다. 감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감원 대상으로 지목된 동료가 마침 부인의 상까지 당했다는 것. 그런 동료를 떠나보낼 수 없었던 양 이장은 차라리 자신이 떠나야겠다며 명퇴를 택했다고 한다. 가족과 주위의 만류도 많았지만 영업부장 시절을 거치며 겪었던 어려움과 극복과정을 돌이켜 보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던 걸까? 퇴직한 지 3개월가량 지나던 때 농협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비료회사 입사를 제의 받게 되었다고 한다. 영업에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양 이장은 흔쾌히 입사 제의를 받아들이고 다시 비료회사 영업본부장을 맡아 10여 년을 일했다. 양 이장에 따르면 비료회사 재직 10여 년 봉급이 농협에 다니던 30년 봉급보다 많았다고 한다.

긍스제 전경. 4칸 겹진 기와로 지어진 울산김씨제각.
긍구제 전경. 4칸 겹진 기와로 지어진 울산김씨제각.

진심이면 통한다!

영업을 잘하는 비결이 궁금해 묻자 양 이장은 “사람을 대할 때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때 그 진정성은 반드시 빛을 발휘한다고 조언해준다. 이어 “때론 거짓말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며 상대방의 기분과 취향에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때론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 “배려해주고 친근하게 다가서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렇듯 사람과 이웃에 대한 배려가 몸에 베여서 일까? 양 이장은 퇴직하고서는 이웃에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혀 이장이 됐다고 한다. 6년 여간 이장 생활을 하며 주민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양 이장은 어르신들 몫으로 식비가 제공되는데 제때 안 드시는 어르신들로 인해 남은 비용을 활용해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주민들이 한데 모여 대청소를 끝내고 공동으로 잔칫상을 차려냈다. 처음에는 저조하던 참여율이 언제가 부터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여 마을주민 모두가 한 가족처럼 어울린다고 한다.

착한 마을 '선동'

선동은 옛날에는 진원고을에서 장성으로 넘어가려면 밤탯재를 넘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이 인심이 좋아 과거보러 가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객인에게 대접을 후하게 잘하여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꼭 밤탯길로 넘어가려고 했으며 그때 착한 마을로 소문이 나 善洞으로 불리게 됐다. 이곳 여자들이 시집을 가면 ‘선동 댁’으로 불리게 되는데 부근의 타 마을 여자들도 시집가서 ‘선동 댁’으로 불리기를 원했다고 한다.

선동시장을 일제 말에 막기 시작해 해방이 될 때 중단됐다가 1950년대 초에 다시 착공하였는데 그 당시 저수지 부지로 들어간 집들이 아래로 내려와 새로운 터를 잡았다하여 ‘새터’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선동마을 입구 482번지에 있는 팽나무는 높이 30m 둘레 30m의 크기로 수령이 300년 이상 지났다고 알려졌다. 또 이 마을 220번에는 4칸 겹집 기와로 울산 김 씨의 제각인 긍구제(肯溝齋)가 있다.

또 석전마을은 돌이 많아 석전(石田)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마을이 마치 배와 같은 형국으로 생겼다하여 샘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고 해 파지 못하게 했으며 한 우물을 먹어야 마을이 좋아진다고 했다. 개인우물을 판 후부터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고 하며 일설에 마을이 자라 등처럼 생겼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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