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정신의 표상...그 서릿발 같은 어록을 찾아서(2)
장성 정신의 표상...그 서릿발 같은 어록을 찾아서(2)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3.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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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남문창의 주인공 오천 김경수 선생의 발자취②

“세상 민심을 돌아오게 하는 일은 백성에 있지 않고 수령에게 있습니다”

정철 우의정에게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금, 수령들의 갈취를 고발하다
시대를 직시하며 할 말을 다한 오천 선생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란 말이 있다. 논어에서 나오는 얘기로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라는 말이다.

춘추 시대,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수레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태산 근처에 이르렀는데 깊은 산 속 어디서 여인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공자는 제자 자로에게 그 사연을 알아보라고 했다.

여인은 “이곳은 참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옛날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가셨고, 이어 제 남편과 자식이 모두 물려 죽었지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렇게 무서운 이 곳을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여기는 그래도 가혹한 세금에는 시달릴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교훈 삼은 공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나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나라의 병폐와 백성의 고통을 절감하고 있던 오천 김경수 선생은 비록 변방의 선비였으나 탐관오리의 부정부패와 잘못된 학정을 제대로 인식하며 그 폐단을 당차게 표출하고 있었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조선에 있으니 빨리 없애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국난을 당해 임금마저 피신한 상태에서 기울어진 국운을 수습하려고 임금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고군분투하고 있던 사람은 도체찰사 송강 정철이었다. 체찰사는 국난 등 비상시국에 임금을 대신하여 전권을 행사하는 관리다.

오천집의 표지와 원문

오천은 정 송강에게 비장함을 담은 서(書)를 보낸다. 상도체찰사정상국서(上都體察使鄭相國書)가 그것이다.

“관리와 군졸들은 모두 도망쳐 산속에서 숨어 있으면서 서로 의심하고, 오늘 내일 구차하게 목숨만 보전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왜구들과 항전하기 위해 군량미와 양식값을 조달하느라 피는 다하고 몸은 말라 있으니, 만민이 이를 보며 평정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부역의 번거로움과 손님 접대비용과 길 닦는 노고와 개천이나 구덩이를 메우는 일, 세금 독촉의 참상, 전쟁에서 죽은 자의 슬픔, 변방에서 지키는 괴로움, 부자간의 이별, 어미와 아내의 통곡, 춥고 굶주린 기색, 원망하고 탄식하는 소리 등 백성들의 천갈래 만갈래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오천은 전쟁의 참상을 낱낱이 정 송강에게 고하며 나라가 최악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도망하여 숨어다니는 자들을 어떻게 돌아오게 할 것이며 이 위급한 지경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겠느냐고.

오천이 이렇게 글이라도 올려 하소연할 윗분이 있는 것만도 어쩌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전라도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낯익은 정 송강이 호남, 호서 지방의 체찰사로 있었기 때문이다. 정 송강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16세 때 담양 창평으로 내려와 호남을 고향으로 인연을 맺었다. 한때 우의정까지 지냈으나 좌천과 귀양, 복직을 거듭하다가 임진왜란을 당해 왜구가 평양 이남을 점령하고 있을 때 호남, 호서 지방의 체찰사를 맡고 있었다.

“합하(閤下:최고 벼슬아치 즉 체찰사 정철을 말함)께 고합니다.

세상 민심을 돌아오게 하고 식량을 충족하게 하는 일은 백성에게 있지 않고 수령에게 있으며, 수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합하에게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고을에 긴요하지 않는 공납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엎드려 바라건 데 합하께서는 임금에게 장계를 올려 공납의 삼분의 이를 줄이도록 하십시오. 수령이 먹는 것이 너무 많으니 급히 명령을 내려서 십분의 팔을 감하고 사람을 시켜 아전들로 하여금 꾀를 부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람의 양식과 말 먹이를 충족케하여 백성들의 힘을 기르게 하고 나라를 회복하려 해야 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 데 합하께서는 참람하다(僭濫하다:분수에 넘쳐 지나치다)마시고 굽어 살피소서”

오천은 전쟁을 맞아 피골이 상접하여 아사 직전에 놓인 백성과 누더기가 된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과감한 신상필벌을 제안한다. 오늘날로 보면 과감한 국가유공자 보훈정책 건의였다.

“임금이 명을 내려 왜놈 하나를 죽이면 급제(진사)와 같은 대우를 한다고 말했으니 합하도 양민이든 천민이든 가리지 말고 왜놈 한 사람 죽이고 벼슬길에 나서도록 실천하여 삼군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합니다”라고.

전사한 가족에겐 관아에서 빌린 양식을 일정 징수하지 말고 나라에서 시키는 노동도 일절 시키지 말며, 부모와 처자를 보존해 주며, 전쟁에서 죽은 자를 포상하여 백성이 가히 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관군으로 군적을 두고 있으나 ‘왜적이 무서워 도망친 자’들과 ‘전쟁 참가자’는 하늘과 땅처럼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고 간했다.

전쟁이 무서워 도망쳐 싸우지 않는 자는, 장본인은 베고, 처자는 붙들어 가두고 집과 농토를 빼앗아 전사가 가족에게 넘겨주고, 그렇게 도망친 자를 잡아오면 왜놈을 사로잡은 것과 같이 상을 내리도록 촉구한다.

장성관아의 발자취를 담고 있는 장성읍 성산리 동산공원 선정비군.
장성관아의 발자취를 담고 있는 장성읍 성산리 동산공원 선정비군.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투에 기꺼이 응해야 하며, 도망가면 가문을 패망에 이르게 한다는 풍토를 뼈에 사무치게 가르쳐야 한다고 외친다.

오천은 열 가지 민폐를 낱낱이 고하며 한낱 땔나무나 하는 천박한 사람이지만 이 고언을 받아들여 시행해 주기를 당부한다.

“전쟁을 핑계 삼아 백성이 쉬지도 못하게 하고 굶주리게 만들면 제 살덩이를 베어서 창자를 채우다 살덩이가 다 떨어져 죽게 될 것이니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오천은 백성이 얼고 굶주려 죽고 의병부대마저 쇠잔해진다면 누구와 더불어 우리 강토를 회복할 것이냐고 항변하며 정 송강에게 고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임금을 향한 충절을 잊지 않는다.

“강과 들은 찬바람과 흰 눈에 쌓여있고 도로는 험악한데 천리 어느 구석에 계실 임금님 옥체는 어떠하신지요. 아 어찌 다 말로 하겠습니까, 통곡할 뿐이옵니다”

왜구의 무자비한 침략과 폭도 행각을 피해 북쪽 어느 하늘 아래로 피신한 선조를 두고 ‘그래도 임금’이라는 이유 때문에 충정을 아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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