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장성정신을 찾아 3] “눈보라 치는 새벽에 말 달리고 별빛 아래서 찬밥을 먹으며...”
[기획연재 장성정신을 찾아 3] “눈보라 치는 새벽에 말 달리고 별빛 아래서 찬밥을 먹으며...”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4.10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난을 맞아 피를 마시며 맹세하던 의병들의 혈기...울분이 울컥

오천집 발문·남문창의비각기·오산창의사 중수상량문에 생생히 남아
장성 정신을 길이 빛내고 본받기 위해 장성군청 안에 나란히 세운 세 개의 상징비문. 1999년에 세운 박수량 선생의 백비 모형과 장성라이온스가 세운 문불여장성비, 그리고 호남오산남문창의비문이다.
장성 정신을 길이 빛내고 본받기 위해 장성군청 안에 나란히 세운 세 개의 상징비문.
1999년에 세운 박수량 선생의 백비 모형과 장성라이온스가 세운 문불여장성비, 그리고 호남오산남문창의비문이다.

오천집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후손 김요원이 간략히 뜻을 밝힌 발문(跋文)에서는 오천 선생의 창의 격문(倡義 檄文)을 한마디로 총평해 놓고 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 흘리지 않는 자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고 했다. 허나 감이 이 몸이 이르기를 ‘세상에서 오천집 격문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가히 피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마땅할 일이다”

발문에서는 선생을 산처럼 우러르는 마음을 구구절절이 담았다.

오천 선생이 몸이 쇠약하고 병들어 기세가 꺾여 약해졌으나 지금 받들어 다시 읽으니 깊은 마음에서 나온 말인지라 글자 하나 하나에 눈물을 한번씩 쏟으며 기운이 산처럼 솟는다고 표현했다.

창의깃발을 높이 든 기상도 역사에 길이 남으려니와 그 실상을 표현한 문장에서도 우국의 정절과 추상같은 기개가 느껴진다.

장성군청 현관 전면에 우둑 서 잇는 호남 오산남문 창의비 모형
장성군청 현관 전면에 우둑 서 잇는 호남 오산남문 창의비 모형

오천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한양이 함락되고 임금이 의주로 피란을 간데 이어 각지의 의병 항전이 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장성현 남문에 나가 여러 고을에 비장의 격문을 띄워 의병을 불러 모은다.

“아아, 선생께서 선비의 몸으로 초야에서 홀연히 일어나 여러 읍에 격문을 보내니 의병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도다. 산이 우니 쇠북이 따라 울고, 구름이 일자 비가 내리는구나. 어찌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선생께서 의연히 단에 올라 피를 마시며 맹세를 거듭하자 강산이 호응하고 의용(義勇:의를 위하여 일어나는 용기)이 분발하여 한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는 구나.”

이에 초야의 영웅호걸과 같은 선비들이 충의를 떨치며 일어나 힘을 다하기로 맹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많은 의병들이 오천을 추대하여 의병장을 삼으니 즉시 의병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여 용인에 이르렀으나 조선측에서 강화를 위해 싸움을 금지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들을 거두어 통곡하며 돌아오게 된다.

의병활동의 어려움을 되새기면서 “물가에서 자고 산속을 누비고 다닐 적에, 눈보라 치는 깜깜한 새벽에 말 달리고 별빛 아래서 찬밥을 먹는데 화살과 돌이 어지럽게 날아들었다”고 그 치열함을 그렸다.

남아있는 남문창의비각기에는 한양이 함락되고 전국이 잿더미가 되어 가는 도중에도 의기를 앞세워 일어나는 의병들의 기세를 기록하고 있다.

“조정에서 물러나 시골에서 책을 읽던 선비들이 난리 소식을 듣고 떨쳐 일어나 피를 뿌리고 단에 올라 강개분격하여 죽기를 맹세했다. 곳곳에서 호응하여 빈주먹을 불끈 쥐고 칼날을 무릅쓰고 앞 사람이 죽으면 뒷 사람이 잇고, 관청에 달려가 전황을 물으며 전쟁에 나가 주겠다는 이가 끊이지 않고 목숨을 걸고 군량을 대는 자가 줄을 이었으니 이것을 누가 시켜서 그랫겠는가. 오직 충의로써 격려하여 임금을 위하였을 뿐, 자신의 생사는 아랑곳 않았던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이조판서를 지낸 조종영이 쓴 ‘오산창의사 중수상량문’의 글은 창의사를 새롭게 중수하는 이유와 내력을 설명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폐허로 버려지던 오산창의사를 왜 다시 일으켜야하는 지, 중수하는 날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 지를 읽게 한다.

“슬프도다. 세월이 아득히 오래되니 처마가 내려앉고 붉던 벽이 연기와 티끌 속에 흩어지니 어찌 자손들만의 감회이겠는가. 비 바람 속에 처마와 기둥이 떨어지니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마저 아파 올 뿐이다. 해는 떨어지고 텅 빈 산에 사람조차 없으니 충신의 영혼 어느 곳에 의탁할 것인가. 풀 향기 우거진 늦봄에 와서야 염원을 담아 우뚝 솟은 유적을 일구니 삼강오륜과 함께 영원하리라”

조종영은 오산창의사를 중수하면서 역시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그 창의정신을 잊지 말고 해마다 정결하게 제사를 올리고 아름다운 충절을 널리 전하기를 당부하고 있다.

“상량을 올리며 엎드려 바라옵니다.

바다와 산이 평안하고 고요하며 온갖 사물은 넉넉하고 평화로우며 호랑이, 표범도 멀리 가고 신령한 용이 용맹을 떨치기를...

비와 햇빛이 고르고 곡식이 익어 해마다 풍년이 깃들기를...

신령의 위엄이 이 땅에 있게 하고 남은 음덕으로 이 백성을 도와주기를...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사당만큼은 장엄하여 흔들리지 않으리니...

후예들이여, 제물을 정결히 갖추고 제사지 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오천 선생의 창의 정신을 쫓아, 국난 앞에서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며 닮고자 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오천집을 되새기면서 오늘 우리는 과연 그러한가 자문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