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천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다”
[편집국 칼럼] “천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4.24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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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이 간디에게 ‘성스러운’이라는 뜻의 ‘마하트마(Mahatma)’를 붙여 ‘마하트마 간디’라고 불렀다. 마하트마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산스크리트어로 예를 들어서 부처를 ‘마하트마 붓다’라고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이 ‘성(聖)스러운’이라는 뜻의 칭송을 받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일까?

그런데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을 지낸 좌파 진영 소설가인 조정래 씨가 “나는 그의 이름에 마하트마를 붙여 ‘마하트마 박’으로 부르고 싶다. 박태준은 한국의 간디다”라고 칭송했다.

2011년 12월 17일 청암 박태준의 영결식장에서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식있는 소설가 조정래 씨가 그리 입이 닳게 칭송하는 청암의 진가는 무엇일까?

청암은 흔히 포항종합제철 사장 또는 회장, 명예회장 등의 이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동시에 민정당 대표와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 4선 국회의원 그리고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누가 봐도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과 부(富)의 중심에서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린 최고 인생’의 전형이다.

그런데 청암의 일생이 어떤 측면이 있기에 이런 마하트마 호칭을 얻었을까. 청암의 일생을 어지간히 짧게 표현하기는 너무 어렵다. 오히려 간단한 평가나 어록을 살피는 게 현명하다.

포항제철이 일본 최고의 철강회사를 앞지르는 신화를 이루자 현장을 방문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의 말을 보자.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종업원들이 너 나 없이 마음으로부터 박태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명을 거기서 받았다.”

청암의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런 평가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청암은 보통 4~5년 걸리는 종합제철소 건설 작업을 제철소 구경조차 한적 없는 38명과 함께 착공 3년 3개월 만에 완공했다. 조업 첫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 달러·순이익 1200만 달러를 냈다. 가동 후 50년 가까이 적자였던 일본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기적’적인 일이었다.

피와 땀을 쏟아 창업하고 성장시킨 포스코에서 25년 만에 물러날 때, 그는 한 주의 공로주는 커녕 퇴직금 1원도 거부했다. 1988년 포항제철 임직원 1만9419명에게 전체 발행 주식의 10%를 우리사주로 배정했을 때도 본인은 한결같이 거부했다.

“노후를 생각해 조금이라도 스톡옵션을 받으시라”는 주변의 권유에 그는 “포항제철은 선조의 피로 세운 회사이다. 공적인 일을 할 때 사욕을 갖지 말라!”고 일갈했다.

청암은 ‘솔선수범’하는 경영자인 동시에 ‘무사욕(無私慾)’의 리더였다.

청암을 다룬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의 저자인 이대환 작가는 이렇게 평가한다.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였던 포항제철 25년 동안 박태준은 한 푼의 비자금도 만들지 않았다. 이는 누구도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20세기 후반 한국사에 길이 기록될 업적이다.”

청암이 현실과 적당히 타협했다면, 포항제철은 부실 회사로 추락하거나 적자를 걱정하는 2~3류 기업이 됐을 것이다. 포항제철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로 세운 ‘국민 기업’이라는 칭호도 퇴색했을 게 분명하다.

청암은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입으로만 외치지 않고 창조경영을 통해 국가에 보답하는 ‘제철보국(製鐵報國) 경영’에 목숨 걸었다. 그리고 회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가 실패하면 조상에게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 우향우하여 영일만 바다에 투신하자”고 외쳤다. 불굴의 정신력으로 그때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갔다.

“천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이(公)의 것이다”라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실천주의자였다.

서거 12년을 지난 오늘, 청암의 족적을 다시 돌아보는 이유는 대일청구권 협상의 댓가로 받은 자금을 ‘조상들에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사용하여 철강대국을 일군 그의 업적이 어느 때보다 돋보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장성 진원면의 한 독자께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외교 정책 이전에 대일청구권 자금의 이면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충언을 새겨들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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