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강 박래호 선생 선대 효행비 방치에 발만 동동
노강 박래호 선생 선대 효행비 방치에 발만 동동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5.1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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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효막심한 현실을 어찌합니까?”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 위치...주변 개발에 밀려나
노강 박래호 선생이 담양 행성리의 애산 효행비 앞에서 선친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노강 박래호 선생이 담양 행성리의 애산 효행비 앞에서 선친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늘이 내린 효자로 칭송받아 마을민이 공덕을 기려 건립한 효행비가 땅 소유자의 외면과 마을민의 무관심으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장성에 본거를 둔 태인 박 씨들의 선대 주거지인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 14-2번지 도로변 공터에 세워진 애산의 효행비가 화제의 대상이다.

1987년에 건립된 이 효행비는 행성리 덕진마을 주민들이 애산 박균현(朴均顯 1896~1939)의숭고한 효행을 기리기 위해 부지를 마련, 김선일 씨가 기록하고 기호중 씨가 글을 썼다.

애산은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으나 돌아가시자 3년 상을 보내는데, 이 때 피로가 누적돼 질병을 얻어 44세의 나이에 작고하게 된다. 이 같은 효행을 기억하고 있던 마을민들이 삼산국민학교의 건립으로 애산의 무덤이 사라지자 효행이 잊혀질까 우려하여 현재의 행성리 마을 입구에 비석을 세웠다.

당시 손자였던 노강 박래호 선생은 15평 남짓한 부지 대금을 선뜻 지불하여 효행비 자리를 확보했다. 하지만 등기 이전을 하지 않았던 게 큰 화근이 됐다.

노강 선생은 “당시 모든 마을민들이 효행비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등기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일대의 땅의 소유주인 김 모 씨가 조 모 씨에게 팔았고 조 씨는 부지 개발을 위해 효행비 코앞까지 울타리를 만들어 등을 떠밀리는 신세가 되었다. 현행법은 등기가 원칙이기 때문에 조 씨가 개발해도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다.

“예전에는 이 자리에 효행비와 마을 정자, 아담한 잔디밭이 구비돼있어 효행의 교육장으로 손색이 없었으나 이제 초라하게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 있고 마을민이 연로하고 줄어들어 돌보는 사람들도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지역에서 마지막 유학자로 불리는 노강 선생은 ‘인륜의 근간인 효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라며 담양군이 나서서 대체부지 확보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창평향교지에 따르면 효행비의 주인공인 애산은 아버지가 중풍으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자 4년 동안에 걸쳐 대소변과 침 등 오물을 몸소 받아냈고, 먹고 싶은 음식은 남의 밭을 갈고 땔감을 구해 팔아서라도 마련해 드렸다. 운명하려 하자 손가락에 상처를 내어 입에 주입하는가하면 돌아가시자 3년 상을 치르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을 만큼 효성을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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