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편집국에서
기고-편집국에서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8.06.27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필, 노병이 족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노병은 죽 지 않고 사라진다 했던가?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그는 90이 넘는 나이에 그의 인생을 종결지을 한마디를 남겼다.
“정치는 허업(虛業)일뿐이다”
그런데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정치를 본업으로 알고 살아왔을까?
만약 좀 더 일찍 정치가 허업인 줄 안다면 정치를 그만뒀을까?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허업 비슷한 것인 줄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궤적을 그리는 것이 정치 아닐까 한다. 
해방 이후 3김 시대란 반세기 동안 한국 정치사를 이끌며 대통령 빼고 모든 것을 다해 봤다는 풍운의 정치인.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로 독재 권력의 2인자로 군림했으며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9선이란 불멸의 기록을 남긴 정치인, 국무총리를 다른 정권 아래서 두 번씩이나 역임했던 행정가 등등 그는 수많은 행적을 남겼다.
그 가운데 유명한 DJP 연합을 선언하며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도록 한 것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나머지 정치 인생은 민주화의 길에 역행하는 흔적으로 일관했다.
대표적으로는 박정희를 도와 군사정권의 기틀을 마련했고, 대일 관계에서 굴욕적으로 한일 수교를 고집하여 국민적 분노를 샀다. 또 1962년 일본 수상과의 비밀 회담에서 한국이 앞으로 독도 문제를 꺼내지 않겠다는 밀약을 함으로써 지금까지 한국이 일본과의 독도 분쟁에서 취약 할 수밖에 없는 약점의 빌미를 제공해 왔다.
민주화의 길목에서 번번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도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거역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짓궂은 운명처럼 박정희 옆에서, 노태우 아래서, 김영삼 위에서, 김대중과 나란히 허업을 쌓아왔던 그도 결국 명언들만 남기고 사라졌다.
노회한 풍운의 정치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의 어록에 나타난 행적을 따라 그의 행보와 교훈을 찾아보자.
● "정치는 허업이라고 했다. 실업은 실업하는 사람이 열매를 따 먹는 게 실업이고, 정치인이 열매 맺어놓으면 국민이 따 먹지, 그 정치인 먹는 것 하나도 없다" (2015년 2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 “한 점 허물없는 생각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짓는데,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 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 (2015년 기자와의 인터뷰)
● “맹자께서 어떻게 2000년 전에, 오늘날 가장 소중한 말씀을 주셨는지 모르겠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2013년 12월 '운정회' 창립총회에서)
●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 (1998년 11월 18일 시사매거진 인터뷰)
● “이름만 들어도 ‘거리에서 소리만 지르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지난 4년 동안 똑똑히 보고 있다.” (1997년 3월, 부산경남지역 당원 연수회에서 김영삼 정부를 평가하며)
● “역사는 기승전결로 이루어진다. 5.16은 역사 발전의 토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를 일으킨 사림이며 전두환 노태우는 그 계승자이고, 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은 그 전환에 해당된다.” (1993년 5월 5.16 민족상 수상식에서
● “5.16이 형님이고 5.17 (광주사태)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
(1987년 11월 3일 관훈토론회)
● “독도는 갈매기가 똥이나 싸는 장소, 나는 일본에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다.”
(1962년 10월 29일 미국 외교문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