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하제16
알아야 면장하제16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8.06.2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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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를 향해 소리내라

중국 춘추전국 시대 제나라의 수도 임치(臨淄)는 천하의 으뜸가는 대도시였다. 이 임치성에는 성문이 13개 있었는데 그중에서 서문의 하나인 직문(稷門)에는 천하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이나 사상에 대하여 연구하고 그 결과를 기탄없이 토론하는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요람지였다.
당시 제나라의 위왕(威王)은 나라가 부강하려면 인재들이 모여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문인 직문 부근에 호화저택을 짓고 인재를 모아들여 학문 토론의 광장으로 삼았다. 그들에 대한 대우도 고위 관료 급료를 주어 자유로운 토론과 연구를 하게 했으나 일정한 일은 맡기지 않았으니 사상가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직문에는 여러 가지 사상과 학술을 연구한 학파와 학자들이 중원의 여러 나라로부터 모여들었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孟子)와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도 시대를 달리하며 이 직문에 모여 매일 자유로운 토론을 벌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백가쟁명 (百:일백 백, 家:집 가, 爭:다툴 쟁, 鳴:울 명)’이라 불렀다. 백가쟁명은 자유 분위기가 보장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제의 위왕은 직문에 관한 한 이러한 자유 분위기를 절대 보장하고 적극적으로 백가쟁명을 장려하였던 것이다.
직문의 백가쟁명 시기는 중국의 학문·사상의 황금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토론과 논쟁으로 인하여 학문·사상은 더욱 성숙·발전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다.
지방선거에서 완패당한 자유한국당이 그 원인과 책임론을 두고 집안에서 목소리가 높다.
그러면서 계파 간의 갈등이 수면위로 떠올라 한 집안에서 ‘네 탓 내 탓’을 외치며 묵은 원한과 고성이 끊이질 않고 있다. ‘책임질 줄 알아라’에 그치지 않고 ‘네가 당을 떠나라’는 노골적인 분노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백가쟁명을 보는 듯하다. 고사에서는 나라와 백성을 살리기 위한 쟁명이었으나 자유한국당은 자신들만 살기 위한 쟁명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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