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이 되기 전과 후의 행복
스물이 되기 전과 후의 행복
  • 강성정 기자
  • 승인 2024.06.03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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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정편집국장
강성정편집국장

가깝게 지낸 고향 친구 다섯 명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기로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들 도시에서 터잡고 가정까지 꾸렸다.

나이 오십이 넘어 부모님들이 작고하시자 고향에 갈 일이 뜸해진 친구들은 고향이란 소리만 들어도 몹시 설렜다. 옛날 생각들에 그들은 잠까지 설쳤다고 말했다.

드디어 그들은 고향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내내 어릴 적 얘기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유독 말수가 적었던 한 친구마저 재잘거리니 다른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인의 집에서 짐을 풀고 그들은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마을 정미소 뒤 쪽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 노래자랑을 했던 일, 좋아했던 여학생에게 몰래 편지를 건네주던 일, 아버지께 혼나고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였던 일 등등이 가슴을 울렸다.

저녁 밥상에 올라온 시래기 국과 묵은 김치는 더없는 기쁨을 느끼게 했다. 그동안 맛보지 못한 음식 마냥 모두 과식했다. 모두들 내려오길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밤 8시가 넘어서자 하나 둘 씩 얼굴 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딘가 불편한 표정들이었다.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던 한 친구는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가 아프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잠자기 전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지 않아 잠이 안온다는 친구도 있었다. 우유를 마시고 싶어 동네 슈퍼에 갔던 친구는 빈 손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말이 없던 친구들은 속으로 깊은 탄식들을 했다.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모두들 이심전심이었다. 자신들은 어릴 적 자신들이 아닌 도시생활에 물든 중년들이었음을 깨달았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온전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에 있다는 것도 느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일정을 줄여 그 다음날 도시로 되돌아갔다.

태초에 사람의 수명은 20년이었다고 한다. 말은 30년, 개는 25년 등등 각 생명체들은 자신의 수명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인간들은 다른 개체보다 목숨줄이 짧은 것을 놓고 신에게 따졌다. 신은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말에게서 생명연수 15년, 개에게서 10년 등등을 깎아 인간에게 주었다.

인간의 수명은 70년으로 늘었지만 남의 인생을 빼앗은 탓인지 온전히 행복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자신의 원래 수명인 20년 동안은 행복할 수 있지만 나머지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그럴싸하다.

돌이켜보면 결혼이후 자식들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기만 했지 자신을 위해 했던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런 욕심없이 부모들이 차려준 밥 먹고 동네어귀에서 친구들과 생각없이 뛰놀고 그 어떤 갈등에 휘말리지도 않았던 시절이 행복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단지 이후의 삶과 비교해될 뿐이다.

고향을 찾아갔으나 하루만에 되돌아 온 친구들의 푸념들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 때 시골집을 세컨하우스로 사는게 유행이었다. 그림같은 정원을 꾸미고 여유있는 노후를 즐기자는 것이 퇴직자들의 로망이었다.

후유증은 7~8년 후에 나타났다. 전원주택이 매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가격을 낮춰도 쉽사리 처분은 안된다. 골칫덩이로 변해버린 전원주택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공인중개사들은 전원주택을 사러 온 구매자에게 먼저 연세(年貰)로 살아보길 권한다고 한다. 시골집은 월세가 아닌 1년치 집세, 연세가 있다.

1~2년을 살아보고 나서 귀촌을 결정하는 것은 어찌보면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에 있다”라고 말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이 다들 다르지만 부지불식간에 행복이 비교되는 것은 본능이다.

분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눈에 안 띄어도, 자신이 모르더라도,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존재한다. 이것은 비교불가이고 거대한 댐을 지탱하는 제각각의 돌이다. 살아 생전에 인식하든 못하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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