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우리가 사죄해야..." 일본의 지성 '오에 겐자부로'
[편집국 칼럼] "우리가 사죄해야..." 일본의 지성 '오에 겐자부로'
  • 장성투데이
  • 승인 2023.03.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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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두 사람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있었다.

<설국>을 대표작으로 남긴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수상, 1972년 별세)와 <만엔 원년의 풋볼>을 남긴 오에 겐자부로(1994년 수상)다.

그 오에 선생이 지난 3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일본 전후 세대 대표적 작가로 전후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작가다.

‘한 노인의 사라짐은 한 시대의 도서관이 사라짐을 의미한다’는 말도 있듯이 한 저항적 지식인의 사라짐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

오에 선생은 별세한 지 보름이 넘은 뒤에야 그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일본 사회에 깊이 침잠해왔다. 그러나 일생 동안 평화운동에 전념하며 아베 정권에 저항하여 절필을 선언했던 사람이다.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을 철폐하여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오에 선생은 한국의 지성인과 유달리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친한파다. 김지하 시인이 구속되자 국가를 초월한 석방운동을 펼쳤고, 황석영 선생이 베를린에서 망명생활하고 있을 때 김영삼 대통령에게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광주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깊은 공감을 갖고 남북문제를 평화의 시각으로 바라보려 줄기차게 노력해왔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었을까.

“일본은 중국을 침략했고 한국의 땅과 사람을 일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저지른 일에 대해 속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은 평생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속죄해야 합니다”

추한 일본의 속성을 파헤치며 지성을 향해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오에 선생의 가장 빛나는 꼬리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돌아온 뒤 일본 왕이 주는 문화훈장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노벨상이 세계적인 영광이라면 일왕이 주는 훈장은 일본의 최고 영예였다.

이 때 오에는 거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무도 없으므로’ 대단한 지성인의 상징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소식을 들은 한국의 많은 문인들은 일본에 이런 지성인이 있음에 대해 깊은 울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에는 가족사 때문에 마음에 그늘이 깊었다. 일본의 유서 깊은 무예 가문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유일한 아들인 히카리는 선천성 지적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히카리는 출산 과정에 이상이 생겨 생명을 구하려 뇌수술을 하다가 지적 장애인이 됐다. 두 부부는 볼 수도, 말할 수도 없게 된 아이를 평생 가슴에 안고 길러야 했다. 부부가 겪은 고초는 문학적 승화를 거치면서 오에를 노벨상으로 이끌었다.

오에는 지적 장애아와 아버지와의 관계를 모색하는 여러 작품을 집필했다. <개인적인 체험>, <허공의 괴물 아구이> 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장애아 부모로서 감당해야 할 삶을 성찰하고, 폭력 앞에 놓인 인간에 대해 깊이 성찰하면서 국경을 넘어 사회적인 약자,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작품 속에 그려냈다.

훗날 오에는 주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더 고초를 겪은 분들에 비하면 나의 체험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내 아이가 준 긴장 때문에 나는 작품을 계속 쓸 수 있었다.”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도 평생 변함이 없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 민주주의란 똑바로 서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선생님께 배웠다.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적 인간으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일본의 양심이 민주주의에 던진 염원이다.

현재 한일 양국의 주변 날씨가 매우 흐리다. 한줄기 회오리바람으로 지나갈 지, 긴 가뭄으로 이어질 지 예측 불허다. 위정자들이 야욕과 위선의 옷을 걸치고 말끝을 흐리니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의는 언제나 승리했다. 비록 승리가 늦게 찾아오더라도.

사라진 일본의 양심, 오에 선생이 외친 것처럼 ‘똑바로 서서 거짓말 하지 않는 민주주의’ 부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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