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이재명 배신자들
[편집국 칼럼] 이재명 배신자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9.25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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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듬성듬성 길게 자란 흰수염, 그리고 수척한 얼굴. 단식 22일째를 맞아 병원에 입원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클로즈업 된 모습이다.

21일, 제1야당 대표의 체포 동의안이 동료 국회의원들의 찬성표에 의해 가결됐다. 여당보다 월등히 많은 의석수를 가진 야당이었지만 일부 배신자들이 그들의 보스를 체포하도록 표를 던진 탓이다.

295명 의원 가운데 민주당 의원이 167명이었으나 149표가 체포동의안에 동조했다. 계산해보면 민주당 의원 중 30여 명이 이탈하여 이재명 체포에 동의했다.

같은 민주당 동지이면서, 민주당 이름으로 출마해 국회의원 뱃지를 달았으면서 이럴 수가 있을까? 당 대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누워 있는데 친명계와 비명계가 필요 있을까? 옛 어르신들 표현을 빌리자면 “천하에 몹쓸 놈들”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철저한 잇속 집단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궁지에 몰린 보스를 두고 배신의 칼을 이렇게 드러낼 줄은 몰랐다.

하기야 임진왜란 직전, 두 파로 나뉜 조정에서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 전쟁 동향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선조 임금에게 “조선 침략에 열 올리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비해야합니다”라는 신하가 있었던 반면, “전혀 그렇지 않사옵니다 전하, 저들의 말이 틀렸습니다”라고 반대파를 모함하려는 자들이 있었으니...

아무리 정치의 깊은 속을 모르는 국민이라 할지라도 오직 자기의 살길만을 생각하는 정치의 추접함을 다시한번 절실히 느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전에서 ‘추접하다’의 뜻을 찾아보니 ‘더럽고 지저분하다’로 나온다. 생각만 해도 아주 역겨운 표현이다.

국회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순간 한 지지자가 “이 배신자들아”라고 외친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다른 지지자들은 “이것이 당이냐”, “이게 국회냐”, “너희가 인간이냐”고 외쳤다.

이러한 외침은 동료 야당에 대한 핏발 서린 통곡이었다.

이번 체포동의안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극과 극을 달린다. 두 쪽으로 갈라진 나라의 민심을 읽게 만든다.

‘속이 시원하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정당하게 투표한 듯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대표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등 이재명 가결을 정당화하는가 하면 ‘민주당 내 수박들 기회주의자들이 많다는 증거’, ‘민주당은 이번 기회를 잘 살려서 해당 행위자를 색출하고 더 단단한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해야’라는 격려성 글도 많았다.

어떤 사안이든 개인의 판단과 선택은 자유다. 국민들의 그런 행위를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속 정당의 정치인은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가 있어야 한다.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보이는 한 의원의 투정을 떠 올려보자.

“어떤 지역구에 친명계 후보가 그리도 설치고 다니는데 비명계인 반대쪽 현역 의원이 좋아할 리 있겠습니까? 당연히 이재명이 물러나길 원하겠죠”

곧 다가올 4월 총선에서 살아남는 게 목표일 뿐, 다른 이유가 필요치 않다는 말이다. 이 대화는 이것이 현실 정치란 것을 가르쳐 준다.

정치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두 가지 명언이 있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과 ‘정치는 배신의 역사’라는 말이다. 생물이란 말은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기에 언제 어떻게 방향을 틀 지 모르는 생물’, ‘먹이 따라 움직이는 생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는 생물’이라는 등등의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조직문화지만 언제나 배신이 도사리고 있었다.

배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있었다.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배신은 인간 사회의 일부였다. 동물의 세계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먹잇감을 둘러싼 배신, 암컷을 둘러싼 배신, 승부를 향한 배신을 흔히 봐 왔다.

배신은 종종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공한 배신은 역성혁명(易姓革命)이란 이름으로 기록되고 실패하면 ‘쿠데타’로 끝나 멸문지화를 입었다.

어디를 가나 정의롭지 못한 배신은 생명이 길지 않았다. 정치를 사리사욕으로 포장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중국 복송 때의 탁월한 정치가이자 유학자인 사마광과 제자 유안세의 대화를 엿들어 보자.

유안세 : 수 만개의 한자 중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한 글자를 골라 주십시오.

사마광 : 그것은 성(誠:정성 성)이네.

유안세 : 성은 어떻게 지키는 것입니까.

사마광 : 성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네(從不妄語始).

위선으로 앞을 가리며 나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쓰디쓴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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