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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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07.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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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잘가라 …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었고 영화 ‘1987’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28일 별세했다.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뜬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터라 충격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자식은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은 자식을 그들의 품 안에만 묻지 않았다. 지난 2011년 타계하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그랬으며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그랬듯이 이 땅의 부모들은 그들 자식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아니 오히려 당신의 자식들보다 더욱 모질고 험난한 여정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저항하며 살아왔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 애국가라 불리는 ‘님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불리는 광주의 노래가 있다. 바로 ‘오월의 노래’. 80년 5월의 참혹한 상황을 가사에 실어 섬뜩하고도 적나라한 묘사가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마저 느껴지게 하는 이 곡의 멜로디는 미셸 폴나레프 (Michel Polnareff)의 곡 "Qui à tué grand maman?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를 행진곡 풍으로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 노래의 주인공이기도 한 5월 광장의 어머니회(스페인어: Asociación Madres de Plaza de Mayo)는 1976년에서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를 통치한 군사정부가 일으킨 더러운 전쟁 기간 동안에 실종된 어린자식들을 찾고자 이 노래를 불렀다 한다.

이들처럼 이 땅에서도 엄혹한 군사독재시절 무고하게 희생된 이 땅의 수많은 박종철, 이한열과 같은 자식을 둔 어머니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바로 1985년 12월 창립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이다.

민가협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구속자가족 협의회’를 모태로 1976년 양심범가족협의회의 전통을 이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재일교포간첩단 사건 등 유신독재 시절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던 가족들과 1985년 미문화원 사건, 민정당 연수원 점거농성 사건 등 민주화를 요구하다 구속된 수많은 학생들의 가족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민가협’은 창립부터 현재까지 양심수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왔으며 ‘양심수’ 존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5년 세계최장기수 김선명 석방 캠페인 등을 비롯해 국제사면위원회 등 세계적인 인권단체와의 연대활동을 벌였다. 여러 인권단체들과 함께 1999년 12월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를 결성, 활동을 벌인 결과, 2000년 9월 3일 마침내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한으로 돌아갔다.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보안관찰법 등 민주주의와 인권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악법철폐 운동을 벌였으며, 그 결과 사회안전법(1989년), 전향제도(1998년), 준법서약서(2003년)가 폐지되었다. 특히 국정원(안기부), 경찰 대공분실, 검찰 공안부, 공안문제연구소(경찰대학 산하기구) 등 공안수사기구에 대한 감시활동과 문제제기를 해왔으며 이러한 활동은 2004년 7월, 공안문제연구소 폐지를 이끌어내는데 밑바탕이 되었다.

민가협의 중심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와 같은 이가 있었다.

촛불의 심지 속엔 바로 이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촛불로 승화시켰던 이들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슴 먹먹한 한이 서려 있었던 것이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덥다는 이 여름. 우리는 아직 가서는 안 될 사람들을 너무 쉽게, 너무 일찍 보내고 있다.

그대여 흘러 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 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중략)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 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그대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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