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현사 묘각스님(2)
묘현사 묘각스님(2)
  • 백형모 기자
  • 승인 2018.09.11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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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으로 가는 大道를 열 수 있고,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장성 축령산을 배경으로 남녘을 향해 중턱에 자리잡은 묘현사 대웅전. 무소유 철학으로 털어내는 텅빔의 가르침을 실천하듯 고요함만 가득하다. (사진 왼쪽은 축령산 입구 묘현사 표지석과 묘각스님이 평생을 헌신하여 완성한 법화삼보경 완역본)
장성 축령산을 배경으로 남녘을 향해 중턱에 자리잡은 묘현사 대웅전. 무소유 철학으로 털어내는 텅빔의 가르침을 실천하듯 고요함만 가득하다. (사진 왼쪽은 축령산 입구 묘현사 표지석과 묘각스님이 평생을 헌신하여 완성한 법화삼보경 완역본)

산사의 향기5

“사람이 길을 가다가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떨어트렸을 때는 무심코 주워 다시 집어넣게 되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돈을 길에서 발견했을 때는 순간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주울 거란 말이지요. ‘내 것이 아닌 그 무엇에 거리끼는 것’ 이게 바로 양심이란 것입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주범인 양심과 비양심을 이렇게 간명하게 설명한 것은 처음 봤다.
모든 종교가 그토록 이끌고 싶은 대상이 지극한 선의 세계, 바로 마음(心)일진대 마음이 어진 것, 즉 양심(良心)이라면 더 말할 필요 없는 가치일 것이다.  
그 양심이 없어서, 그 양심이 바로 서지 못해서, 그 양심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탁해지는 것 아닌가?
“법관이 부정을 일삼고 교통경찰관이 위반을 하면 누가 그들을 잡아가둘 겁니까?”
요즘 세상을 바라보는 스님의 일갈이 매섭다.
“정치인은 밥그릇 싸움에 바람 잘 날 없고 기업회장은 회삿돈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그 사이에 처한 대중들만 봉인 거지요”
스님의 노기는 여전히 가시질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종교가 지도하고 가르쳐야 하는데 종교마저 추락했으니 할 말 다한 셈입니다. 불교계는 어떻습니까. ‘중 벼슬 닭 벼슬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그 알량한 총무원장 벼슬 가지고 서로 이렇게 흠집을 내고 있으니...”

맑은 하늘이 구멍 뚫린 것처럼 휑하니 드러난 초가을에 산사에서 합장하며 맞아한 묘각스님은 하나하나의 법문에 야생마 같은 굴기가 창창했다.
군대도 다녀오고 젊어서 이것저것도 다해본 사회 경험을 속세에 묻어놓고 산속으로 훌훌 떠난 때가 25살. 벌써 60년이 다 돼가는 세월이다.
스님이 절로 들어온 사연은 부패한 사회와 얼렁뚱당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돈에 대한 개념이 확실치 못해 사회인으로서 모든 것이 안 맞았다. 그런데다 마침 속가의 친 형님이 대단한 법력으로 활약을 하고 계시던 중 우연히 불경 공부를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예 형님을 따라 속세를 뜨게 됐다. 내심 형님의 법력을 쫓아 더 큰 공부를 해 보리라는 속셈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묘각스님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형님이셨던 묘련 큰스님의 말씀과 행적이 자리 잡고 있다.
묘각 스님이 평생을 헌신했던 분야도 바로 묘련 큰스님께서 그렇게 애달피 정진하셨던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었으며 앞으로 더 매진하고 싶은 세계도 바로 그 세계다.
법화삼부경이란 무량의경, 묘법연화경(법화경), 관보현보살행법경을 통합하여 일컫기도 한다.
그 가운데 본법이라 할 수 있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산스크리트어로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라고 하는데 흰 연꽃과 같은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즉 모든 경전 중의 왕으로 여겨지며 대승경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7권 28품(장)으로 구성된 경전이다.
묘법연화경에서 부처는 먼 과거로부터 미래 영겁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다. 그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으로 가는 대도(大道)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고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경전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다.
법화경에서는 석존의 가르침을 토대로 우주만물의 실상이 이렇게 되어있다고 설명하고 인간은 이러한 것이기에 이렇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
법화경에서는 석존께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설파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습니다. ‘다른 종교가 불교를 비난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불교가 보편타당성 있는 종교로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오히려 교화하는 위치에 있다는 뜻입니다”
광범위한 우주관을 설파하시는 묘각 스님은 불교에서는 ‘신과 사람은 동격’이라고 본다고 정의했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진리가 어제 것이 오늘 것과 다를 수 없는 것이지요. 또 그 시대의 진리가 이 시대의 진리와 다를 수 없습니다. 또 영어로 표현된 진리와 한글로 표현된 진리가 다르지도 않습니다”

“지금 세상은 윗 사람들이 더 나쁜 燈上不明의 시대입니다.
중생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사회 지도자들이 더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견월망지(見月忘指)의 이치를 모르고 있다고 설파하신다.
그랬다. 요즘 인간들은 ‘저 달을 보라’고 하여 달을 봤으면 달의 본질만 생각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잊어야 하는데 여전히 손가락의 잔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묘각 스님은 독특한 논리로 우리사회를 빗댔다.
“예전에는 등잔 밑이 어둡다 그래서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등 위가 더 어둡다 그래서 등상불명(燈上不明)이라고 합니다. 사회 구성원인 중생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상류층인 사회 지도자들이 더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는 말이지요”
스님의 세상에 대한 쓴소리를 계속 이어졌다.
“욕지기인 선시기우 (欲知其人 先視其友)라 했습니다. 그 사람을 알려거든 그 주변의 친구들에 대해 알아보라는 것이지요. 또 욕지기군 선시기신, 그 나라 주군에 대해 알고 싶거든 그 곁의 신하들을 살펴보고, 욕지기사 선시기승, 그 절에 대해 알고 싶거든 그 절의 스님들을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묘각 스님은 머리를 깎은 뒤 아직까지 한 번도 곡차나 담배를 한 적이 없단다. 고기도 당연히 멀리하고 있다.
“어느 시대나 사회가 유지되려면 존경받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성철 스님, 청화 스님, 효봉 스님 등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민적으로 존경받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없어요”
한때 외국인이었지만 달라이 라마를 존경했었는데 그 사람이 육식을 자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존경할 마음이 싹 가셨다고 설명한다.
묘각 스님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예언한 것처럼 동방예의지국 조선 땅의 미래는 ‘밝음’이라고 해석했다. 지구촌 우주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말이다. 입적하신 묘련 큰스님의 풀이와 해석을 곁들여 보자.
“한반도는 앞으로 ‘고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이며 영세중립국으로 남을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그 분단의 흔적인 휴전선과 판문점은 세계인들의 관광지가 될 것이다.

 세계 제일의 금강산은 8만9천봉의 수려한 경관을 보기위한 관광객들로 북적여 한국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다”
미래 예언을 극락에서 지켜보고 계실 묘련 큰 스님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이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되면 어이 아니 좋겠는가.
그날을 기대해 본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다.

일체유심조라, 마음 가는 그곳은 어디인가

당 나라 때 어느 중이 지체 높으신 큰 스님에게 물었다.

“우주삼라만상(宇宙森羅萬象)이 다 하나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그럼 그 하나는 대체 어디로 돌아갑니까(萬法歸一 一歸何處)”하고 물었다.

이에 큰 스님이 대답하기를 “내가 칭저우(靑州)에 있을 때, 삼베 적삼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라고 답했다.

알 수 없는 동문서답식 선문답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인가?

일체 천강유수(川江流水)의 물이 흐르고 흘러 모두 하나의 바다로 돌아가는데, 하나로 돌아간 바닷물은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 바닷물은 또 햇볕에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구름은 또 비가 되어 내려서 다시 천강유수(川江流水)로 흘러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데 끝없이 유전하며 돌고 도는 현상을 윤회(輪廻)라고 했다.

일체 우주 삼라만상의 유위무위법(有爲無爲法)은 모두 다 마음이 만들어서 마음의 작용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 마음은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 이 마음은 본래 실상실체(實相實體)가 없으나 너무 커서 헤아릴 수 없는 우주 허공에 가득한 공(空)과 유무(有無)와 같아 우리의 사상개념으로 미칠 수 없는 도(道)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체 삼라만상(參羅萬像)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곧 마음에서 지어진다는 것이니 일체 삼라만상이 돌아가는 그곳이 바로 내 한 마음 아닐까?

 

필경주일승이라

“죽음은 끝이 아닌 것이야. 모였다가 흩어지는 한 과정일 뿐이지. 이루어지고 나면 허물어지는 것이고 허물어지면 다시 인연이 모여 생성되는 것이니 있다고 하여 영원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하여 없는 것이 아닌 것이지. 참됨 그 하나면 운명론도 아무 필요가 없는 것이야. 그렇게 지혜로운 삶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필경주일승(畢竟住一乘)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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