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 백형모 편집국장
  • 승인 2019.01.0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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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베트남의 神으로 통하는 박항서 감독의 원동력
인정 많고 겸손한 행동…아버지 같은 감동분출

<베트남, 축배의 도가니>
괜히 눈물이 났다. 숨이 멎을 듯 가슴이 울컥했다.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전반 6분 만에 꽝하이 선수가 기가 막힌 왼발 슛으로 말레이시아 골문을 흔들 때 벅찬 흥분이 심금을 울렸다. 운동장에서는 90분 내내 긴장과 간절한 염원의 함성이 뒤섞여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추가 시간 4분이 주어졌을 때는 ‘마지막이다. 4분만 버텨라’라는 간절함을 섞어 기도했다. 그리곤 이내 광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우승 직후 모든 국민들이 부부젤라를 요란하게 불며 전국 방방곡곡과 광장, 대로변을 장악했다. 밤이 새도록 도구와 냄비 등을 들고 광란의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손에는 국기인 붉은 금성홍기와 태극기, 박항서 감동의 사진 등이 펄럭였다. 그들의 입에선 ‘베트남 꼬렌(파이팅)’ ‘꼬렌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 구호가 끝날 줄 몰랐다. 베트남 축구 최고의 날이었다.
  
<베트남에 태양이 솟다>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2018년, 이미 역사 속의 한 해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새로운 우정의 싹이 돋았던 한 해였다. 베트남인들에게 2018년은 그야말로 행복한 한 해였다. 베트남인들은 박항서라는 한국인 한 사람이 연출한 1년 동안 ‘위대한 베트남’을 발견하며 감격에 울고 웃고 흥분했다.
23세 이하 젊은 축구선수들이 뛰는 U-23무대 아까운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진출, 그리고 스즈키컵 우승에 이르자 언론들이 박항서를 ‘베트남의 태양’, ‘영적인 지도자’, ‘베트남의 영웅’이라고 서슴없이 표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떤 베트남 언론은 ‘박항서가 베트남인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열어줬다’고 표현하기도 했고, 어떤 언론은 박항서를 비유하여 ‘베트남 국부인 호찌민 주석에 이은 제2의 아버지’라고도 추켜세웠다. 박항서는 베트남에서 최고의 존칭인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베트남 수출 1위는 삼성스마트폰>
베트남에서 수출 1위 품목은 삼성전자가 만든 스마트폰이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전체 수출의 2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며 현지 최대 기업으로 위상을 확고히 했다.
베트남의 기간산업인 지하철 공사 수주는 한국의 GS건설과 대림산업이 맡았다. 하노이 도시철도 운영은 서울시 지하철공사인 메트로의 운영 노하우를 수입, 전수받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장은 삼성전자다. 제조업이지만 베트남인들이 대학생부터 가장 취업하고 싶은 곳이 삼성 회사다. 
그동안 꾸준히 일고 있던 한류열풍에 이어 박항서 열풍이 불기 시작한 올해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국 기업의 진출이 빨라지고 있다.
한국기업은 물론이고, 한국음식에 대한 관심,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한국음식점들이 박항서 열풍 이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한국산 딸기와 사과 배 등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며 박항서와 발음이 비슷한 음료수 박카스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화산 이씨 원조는 베트남 왕조>

혹시 한국의 이 씨 가운데 화산 이 씨가 있는데 이들의 실제 조상이 베트남 왕조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베트남에 첫 독립국가를 세운 리 왕조(1009~1226)의 9대 왕의 왕자 신분이면서 군 총수였던 사람이 이용상(李龍祥)은 바다 건너 조선 땅으로 온 사람이다. 리 왕조가 트란 왕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왕족이 몰살당하는 난국에 처하자 이용상은 배를 타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계절풍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다 닿은 곳이 한반도 서해안의 옹진반도 화산(지금은 북한 황해도 땅)이었다. 3,600여 km를 떠돌다 정착한 베트남 최초의 ‘보트피플’인 셈이다.
화산에 새 삶의 터전을 꾸린 이용상 왕자는 고려에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섬사람들과 힘을 모아 침략자들을 물리쳤다. 이 사연을 전해들은 고려 고종은 그를 ‘화산군’으로 봉하고 일대의 땅을 식읍(食邑)으로 하사했다.
화산 이 씨 종친회가 1995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도무오이 당서기장을 비롯한 베트남의 지도급 인사들이 이들을 환대하고 베트남인과 동등한 법적 대우 및 왕손 인정 등의 호의를 베풀었다. 베트남 정부는 해마다 리 왕조가 출범한 음력 3월 15일이면, 종친회장을 비롯한 종친회 간부들을 기념식에 초청하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항서가 베트남에 용서를 빌었다>
베트남으로 통하는 모든 것이 하나의 물결처럼 감동을 주고 있다.
역사적 친밀감과 한류열풍, 한국 기업의 성공적인 모델케이스, 최근의 박항서의 축구 감동에 이르기까지 역사 이래 두 나라가 형제처럼 가장 가까워졌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베트남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아무 관계도 없는 그들의 전쟁에 개입해 그들을 무참히 살육을 감행하는 상처를 주었다. 그들의 땅에 들어가 가정과 마을을 파괴하고 그 대가로 우리는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파병된 한국 군인들과 베트남 여인들 사이에 수많은 2세들, 라이따이한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어떻게 용서받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는 박항서란 이름을 용서를 대신하여 올리고 싶다.
박항서는 위엄 있는 국가대표 감독이라기보다 아버지처럼 선수의 아픈 다리를 주물러주고, 편안한 비행기 좌석을 다친 선수에게 양보하는 보통 사람. 축구협회가 제공한 승용차 대신 택시를 이용하는 사람. 베트남 최고의 기업이 연봉 인상을 제의하자 ‘나는 돈에 관심이 없다’고 손사래 치며 오직 축구만을 고집해온 사람이다.
겸손하고 인정 넘치는, 서민적인 생활로 사회주의 베트남에 신선한 이미지를 던져준 박항서의 이러한 행동으로 한국이 지은 과거사의 원죄를 베트남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축구를 통하여 분단된 남북 베트남 민족을 통일시키고 베트남의 잊힌 자긍심을 일깨워 주어 그들의 위대함을 발견케 해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새해에도 두 나라 사이에 발전과 번영의 대로가 훤히 트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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