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덜 사는 세상 구갱 쪼께 하실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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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03.29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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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태산자락 첫 마을, 빼어난 풍광 자랑
진원성터, 고산서원 등 풍부한 유적 간직
진원면 고산마을 박길환 이장과 김창현씨
고산마을 박길환 이장이 자신의 과수원에서 가지치기에 열중하고 있다.
고산마을 박길환 이장이 자신의 과수원에서 가지치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장님은 가지 치는 중

불태산자락 아래 첫 마을. 풍수도 모르는 일반인이 언뜻 보기에도 빼어난 풍광 속 그림처럼 자리한 마을.

장성투데이가 고산을 찾은 날.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마을은 농수로 공사가 한창이다. 어디 계시느냐 전화를 드렸더니 저만치서 손짓으로 반기는 진원1리 고산마을 박길환(62)이장. 마을 위쪽 과수원에서 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하느라 손놀림이 재다.

대규모 논농사가 아니고서는 오히려 과실재배가 더 낫겠다 싶어 20여 년 전부터 감이며 사과 등 과수농사만 8천 여 평을 짓고 있다는 박 이장은 지난해만 해도 감 가격이 폭락해 기대하던 수익을 못 올렸지만 올핸 박 이장이 손수 품종 개량한 복숭아에 공들이고 있다며 과실수가 더욱 달고 열매를 잘 맺게 하는 방법에 대해 꼼꼼하게도 설명해준다.

올해로 8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박 이장은 3년 전부터 ‘마을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각 가정마다 마을방송과 공지사항 등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스마트스피커를 보급하고 싶다고 한다. 매번 마을방송을 통해 수차례 방송을 해도 요즘 주택들은 방음시설이 좋아 듣지 못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박 이장이 방송 후 다시 전화 등을 통해 일일이 알려주고 있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며 이 스마트스피커는 마을방송이나 공지사항 등을 재생 반복해 들을 수 있고 자동 응답 기능까지 있어 편리하더라고 한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데다 사람들이 갈수록 과일을 먹지 않아 예전보다 소득이 줄어들었긴 하지만 땀 흘려 일하는 보람은 그 어디에 내놔도 정직하고 가치 있다”고 말하는 박 이장.

마을의 족보와도 같은 고산마을사를 아들과 함께 집필한 김창현씨
마을의 족보와도 같은 고산마을사를 아들과 함께 집필한 김창현씨

김창현씨 ‘고산 마을사’ 집필

고산마을에는 마을의 모든 역사가 촘촘히 기록된 값진 보물이 있다. 바로 ‘고산 마을사’. 이 마을사는 이 마을 김창현(83)씨가 24살 무렵 마을의 서기로 일할 무렵부터 모은 자료들을 수집해 주민의 호적부터 시작해 생활사 전반을 기록한 400여 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자료집이다. 김씨는 이 자료를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장성문화원에 기증하며 장성과 마을의 생생한 자료가 지역의 발전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이 책은 당시 대학생이던 김씨의 장남이 김씨의 자료를 바탕으로 손수 타이핑을 해서 책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김씨의 장남은 현재 타지에서 손해사정인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가족과 마을을 위해 개인적으로 제본한 책이라 그야말로 한정본인 셈. 하지만 몇 권밖에 되지 않는 책을 아는 사람들이 빌려가고는 돌려주지 않아 지금은 김씨가 가지고 있는 책도 취재진이 겨우 빌려 볼 수 있었다.

고산마을은 500여 년 전에 진원박씨가 들어 왔고, 400여 년 전에 황주변씨·광산이씨·행주기씨·탐진최씨가 차례로 들어왔으며, 1900년대에 전주이씨·광산김씨·서산정씨·옥천조씨·홍주송씨·밀양박씨가 들어왔다고 알려졌다.

마을은 본래 12개 마을로 주동, 중동, 광안, 창촌, 상고, 하고, 월송, 흥동, 담대, 회룡, 연동, 묘동 등을 총칭하여 고산이라 한다. 문화유적으로 진원성, 고산서원, 선정비군 등이 마을의 대표적 자랑거리.

복원공사중인 '진원성 터'
복원공사중인 '진원성 터'

숱한 전설 품은 불태산

고산마을을 감싸 안은 불태산은 호남정맥이 추월산에서 내장산으로 내닫다가 도장봉 부근에서 남쪽으로 가지 친 지맥이 도마산, 투구봉, 병풍산을 일구고, 병풍산에 이르면 두 갈래를 친다. 북쪽은 송대봉과 장군봉으로 가고, 남쪽은 마운데미, 천봉, 불태산을 이루고 어등산까지 뻗어가다가 황룡강과 영산강에 가로막혀 여맥을 다한다.

물줄기는 서쪽은 장성호와 황룡강, 동쪽은 담양호를 통하여 영산강에 합수되어 목포 앞바다에서 서해에 살을 섞는다.

불태산 주변에는 송강 정철과 석탄 이기남이 강학했던 정이암터를 비롯한 상청사, 하청사, 인월사 등 80여 개 절터와 유서 깊은 문화유적들이 많다. 불태산은 장성에 합쳐지기 이전인 옛 진원현의 진산(鎭山)으로 마치 금방 무슨 일이라도 날 듯 용이 달리는 형상을 취한다. 그래서 옛날 어떤 사람이 불태산에 절을 지어 상하연(上下淵)이라 일컫고 그 꿈틀거리는 산세(山勢)를 다스렸다고 한다.

황산벌 마지막 백제의 애틋한 의기바위의 전설도 장군굴에 얽힌 견훤의 탄생설화, 욕심 많은 천석군의 학전봉 형제의 우애의 본보기가 되는 황금재의 전설을 전해준다.

산길 따라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한창 진행 중인 공사가 있으니 바로 진원성 옛터 복원 공사다.

찬란한 고성 ‘진원성’터

진원성은 진원현의 현성으로 고려 초기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동지지>의 성지조에 【진원 고읍 성 남십리 불태산 동록주 1,400척,정3, 계2】라 기록되어 병진성과 동일성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 명종(재위1170∼1197)때의 문인인 김극기가 지은 시에 진원성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세기 이전에 현성으로 쌓아서 정유재란으로 폐허되기 이전까지 고을을 다스린 성으로 보인다.

이 성은 표고 40m쯤의 대체로 낮고 평평한 분지형의 두 개의 작은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성한 퇴뫼식 산성으로 남아있는 유구를 통해 볼 때 성벽은 내탁법에 의해 수축하였고 성벽 안쪽은 내벽을 축성할 당시 삭토해 내벽 이 형성 되었는데 배수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벽의 길이는 800m로 추정되며 가장 양호한 동벽의 높이는 3m내외로 6·25때에 진원지서의 방호벽을 구축 할 때 거의 훼손되었고, 그 후에도 새마을 사업 등에도 성곽돌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고산서원 입구
고산서원 입구

기정진의 고산서원

또 마을 아래쪽에 자리한 고산서원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선생이 조선(朝鮮) 고종(高宗) 15년(1878)에 정사(精舍)를 지어 담대헌(澹對軒)이라 이름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후손들이 1924년에 중건하여 1927년에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고 편액을 건 곳이다. 기정진 선생은 조선(朝鮮) 말기(末期)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시호는 문정공(文靖公)으로, 사당에 주향(主享)되었으며, 이최선(李最善), 기우만(奇宇萬), 조의곤(曺毅坤), 김록휴(金錄休), 조성가(趙性家), 정재규(鄭載圭) 선생 등 5위의 신위(神位)가 배향(配享)되어 있다. 현재 경내에는 외삼문(外三門), 강당(講堂), 동재(東齋)인 거경재(居敬齋), 서재(西齋)인 집의재(集義齋)가 강학공간(講學空間)을 이루고, 내삼문(內三門), 사당(祠堂)인 고산사(高山祠)가 제향공간(祭享空間)을 이루고 있고, 선생의 문집(文集)·목판(木板) 등 이 장판각(藏板閣)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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