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덜사는 세상 구갱 쪼께 하실라요?
우덜사는 세상 구갱 쪼께 하실라요?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8.04.05 14: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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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하얀 벚꽃비 내리는 마을
장성보다 광주 가까워 전원생활 적지
동화면 최초 여성이장 송계2리 나영심 이장
송계2리 우산각 앞 산책로. 장성투데이가 방문한 날 산책로 옆 가로수로 식재된 벚꽃이 휘날리며 꽃비를 내렸다.
송계2리 우산각 앞 산책로. 장성투데이가 방문한 날 산책로 옆 가로수로 식재된 벚꽃이 휘날리며 꽃비를 내렸다.

장성투데이가 마을을 방문한 날. 마을 우산각 앞에 펼쳐진 벚꽃 산책로에선 새하얀 꽃비가 내렸다. 수로를 따라 꼬불꼬불 펼쳐진 산책길을 올라가면 삼서로 가는 길. 봄바람 타고 꽃비를 맞으며 삼서로 가고 싶다.

송계2리 축내마을은 마을 모양이 마치 물위에 떠 있는 배 모양을 닮았다 하여 예로부터 방죽안(築內)라 불렀는데 장성댐이 건설되자 광산으로 내려가는 용수로가 마을 앞을 흘러감에 따라 수로의 높은 둑이 마을을 감고 도는 형국이 되어 마을 이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송사마을은 마을 앞산의 이름이 염불암산이라 옛날에는 松寺라 불렀는데 언제부턴가 松沙로 바뀌었다 한다. 하여 마을 앞산인 염불암산의 중의 바랑을 닮았다 하여 ‘바랑터’라 하기도 하고 ‘조리터’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예전엔 나주였다가 다시 함평군에 속하기도 했었는데 1914년 들어서야 행정구역 개편 때 장성군에 속하게 된다.

6·25사변 당시 보도연맹사건으로 3명이 죽고 인공 때 3명, 서울 수복 후 7명이 사망했으며 마을가옥 중 인공 전에 4채 인공 때 1채, 진주 후 2채가 소각되는 아픔을 겪었다. 인공 때는 동화면의 모스크바(당위원장 조용길, 민청위원장 김필권, 분주소장 조사원이 이 마을 출신이었다)라 불리기도 했었는데 당시 음력 9월말께 수복됐었는데 임곡 가막멧재, 본양 지달재, 동화 3군데서 들어왔으나 짙은 안개로 3일간 들어오지 못해 몰살당할뻔 한 위기를 넘겼으며 삼서 흥정출장소 관할로, 소개(疏開)되지는 않고 잠깐씩 산으로 피해 다니는 등 지난시절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 아픈 현대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동화면 최초 여성 이장 송계2리 나영심 이장
동화면 최초 여성 이장 송계2리 나영심 이장

아픈 현대사 간직한 마을

이 마을에는 마을 앞에 느티나무 한 구루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는 1804년에 옥청 조 씨 기형이 늦게까지 아들이 없음을 한탄하며 마을 앞에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어 훗날 내 이름을 기억하라 했다하여 지금도 ‘조정자’라 부른다 한다.

동화면 최초 여성이장인 나영심(64) 이장은 남편 김대진(67)씨와 함께 1998년에 귀향한 뒤 지금까지 마을을 일구며 살아왔다.

타고난 농사체질이라는 김대진씨는 8남매 중 3째로 광주서 생활하다 47세에 귀향해 1만여 평에 달하는 벼농사부터 시작해 대규모 동물농장과 지금의 영농회사인〈송계福청국장〉까지 안해본게 없을 정도로 억척스럽게 살아왔다고.

덕분에 나 이장부부는 10여 년 전부터 농민신문 등 각종 매스컴에 소개될 정도로 성공한 귀농부부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나 이장은 이 마을에 내려오기 전 갑상선 질환을 앓는 등 그리 건강치 못한 체질이었는데 이곳 마을에 내려온 후 씻은 듯이 나아 이젠 그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한다. 나 이장은 그 비결이 모두 이 마을의 맑고 쾌적한 공기덕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5년여 전부터는 외지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사는 주민이 늘어 벌써 10여 가구가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장성보다 오히려 광주가 더 가까운데다 풍광 좋고 공기도 맑아 지금도 귀농귀촌인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나 이장 남편 조재진씨가 본인이 직접 만든 산란 전용 양계장에서 병아리와 달걀들을 돌보고 있다.
나 이장 남편 김대진씨가 본인이 직접 만든 산란 전용 양계장에서 병아리와 달걀들을 돌보고 있다.

‘인기만점’ 마을 공동 목욕탕

지난 2003년에는 장성최초로 장수마을로 선정돼 마을발전기금 1억 5천여만 원을 지원 받아 마을회관 등을 건립하고 장성 최초로 마을 공동 목욕탕을 건립하기도 했다. 당시 마을엔 105살까지 사셨던 어르신이 계셨을 정도라고. 지금도 이 마을엔 90대 어르신이 3분이나 계시고 마을주민의 절반이 8~90대 어르신들이다. 토요일은 여자, 일요일엔 남자들이 번갈아 가며 이용하는 마을 공동 목욕탕은 어르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설.

마을 주민 간 우애도 좋아 해마다 설이 되면 동네 주민이 모두 마을회관에 모여 합동 세배를 올리고 차례를 지내는 등 주민들 모두가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는 보름을 앞두고 당산제를 지내는 등 옛 풍습을 되살리고 주민들 화합도 다지고 있다고 한다.

몇 해 전부터는 80회 생일을 맞는 어르신들을 위해 돈을 모아 주민들 모두 참여해 여행을 다녀오는 등 마을 위안잔치도 풍성하게 치르고 있다한다.

나 이장 부부는 ‘송계 복 청국장’이 이 마을에서 생산한 토종콩을 이용해 전통방식으로 청국장을 발효시켜 옛맛을 되살리려 했다고 한다.

이 청국장은 검정콩 청국장 분말·노란콩 청국장 분말·끓여 먹는 청국장 등을 제조하는데 검정콩 청국장 분말은 특허까지 받았다. 또한 냄새가 없어 먹기 편하고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불티나게 팔려 한 달 평균 매출만 1,500만원에 이른다고. 이 수익금의 일부는 마을 뿐 아니라 관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나 이장은 황룡농협의 첫 여성이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또 송계2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어른이 있다. 지난 2000년부터 3년간 장성문화원장을 역임했던 12대 이상용(81)노인회장. 어릴적 배운 유학과 한학에 정통했던 이 회장은 장성에 새워지는 비석 대부분의 글씨를 쓸 정도로 빼어난 붓놀림을 자랑한다. 나 이장의 고숙이기도 한 이 회장은 지금도 마을의 큰 어른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마을 대소사를 여쭐 정도로 큰일을 담당하고 있다.

12대 장성문화원장을 역임한 이상용 노인회장.
12대 장성문화원장을 역임한 이상용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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