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작가, 회화문화재 박사 정향자의 소망
사경작가, 회화문화재 박사 정향자의 소망
  • 최현웅 기자
  • 승인 2019.11.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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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붓 인생, 내고향에서 전시회 열고 싶어요"
고희 넘긴 장성읍내 내로라하는 부잣집 둘째 딸
난원 정향자 작가가 작품활동을 하는 화전동 작업실에서 사경의 사치와 에술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난원 정향자 작가가 작품활동을 하는 화전동 작업실에서 사경의 사치와 에술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년이면 붓을 잡은 지 40년이 돼갑니다. 끝이 없는 수행의 연속이지만 도중에 ‘되돌아봄 과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내 고향 장성에서 한번 그 동안의 붓 인생을 펼쳐 보이고 싶은 생각이 가득합니다”

늘그막에 사경(寫經:경전을 옮기는 것) 예술에 매료돼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3시간 정도 잠을 자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난원 정향자 박사(73). 그동안 수십 차례 전시회를 가져봤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선보일 기회가 없어 아쉬웠단다.

난원 선생은 고희를 넘긴 나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외모에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넘쳐난다.

“경전이나 불화를 그대로 옮기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똑같이 베끼는 작업을 하는 사람인줄 압니다만 사경을 행하는 이들은 작품에 대한 철학과 작품을 대하는 손길 하나에 작가의 영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안 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31변상도
대방광불화엄경31변상도

난원 선생이 사경을 대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2천년도 초 어느 여름, 집안일 때문에 찾은 보성 대원사에서 현장 스님은 서예를 하던 정 박사에게 사경을 하며 수행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처음엔 스님의 권유를 뿌리쳤었지만 차츰 마음이 바뀌었다. 그러다 결국 서예가로서 만학의 길을 걷고 있던 정 박사는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으로 ‘사경’을 택하게 되고 2005년 본격적으로 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사경(寫經)이란 성인의 책을 옮겨 쓰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경의 광선유포(廣宣流布: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일)를 위한 것이 사경의 목적이었으나 고려에 들어와서는 감지금니(紺紙金泥)의 화려한 장식경으로 발전하게 된다.

고려시대 화려하고 장엄한 금니로 쓴 불경과 변상도(變相圖. 경전과 교리 내용 그림으로 압축한 그림)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보물이며 문화유산으로 꼽히고 있다.

난원 선생은 장성읍 월산동에서 아버지 정은모 선생과 변을순 여사의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22살 영광으로 시집가기 전까지 장성에서도 내로라하는 집안의 귀한 딸이었다.

선생은 일찍부터 글 솜씨가 좋았던 외할머니 김오묵 여사의 영향을 받아선지 손재주가 뛰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장성읍내에서 양장점을 차리고 손수 제작한 옷을 디자인 해 팔기도 했다. 그러다 중년이후 취미로 시작했던 서예가 평생의 업이 될 줄은 선생도 몰랐다고.

대보적경30×50㎝감지에 금
대보적경30×50㎝감지에 금

“작품 위해 잠 잘 시간도 없어”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했던가.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짧으면 3개월 길게는 반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는 난원 선생은 작품을 구상하면 스케치를 하기 전 수차례에 걸쳐 눈과 손끝으로 밑그림을 그린다.

일반인이 보기엔 별것 아닌 이 과정이 난원 선생에겐 거의 한 달이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다. 경서에 쓰인 글자의 모양, 글자와 글자의 간격, 선의 굵기 등 일반인의 눈으로는 감지 못하는 섬세한 실선 한 올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머릿속 뇌리와 손끝의 감각에 담아내야만 온전히 그리고자 하는 경전과 불화를 그려낼 수 있다고 한다.

난원 선생은 논문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간 하루 3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침실에 들어가 잠을 자면 깊은 잠에 빠져버리기에 잠시 소파에서 눈을 붙여가며 공부와 작업에 몰두했다고. 난원 선생은 지금도 “당시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았고 책을 읽을수록 재미와 흥미, 신비로움이 더했으며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공부였기에 항상 환희로 가득 차 있었어요”라고 회고한다.

이 때 썼던 논문이 2007년 호남대에서 받은 ‘수행법으로서의 사경과 그 서법에 나타난 정신성’ 이란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이다.

작업과정을 재현하는 정향자 작가
작업과정을 재현하는 정향자 작가

숙세를 관통한 듯 빼어난 작품

사경의 매력에 빠져 작품활동에 전념하던 어느 해 선생의 작품을 보고 있던 송광사 현묵 스님은 선생의 사경 작품을 보고서는 현세의 노력으로만 숙달된 솜씨가 아닌 숙세(宿世.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 전생)의 연이 닿은듯하다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선생의 작품은 불자들과 예술인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선생은 비단 불경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지난 5월 15일부터 보름간 광주 U갤러리에서 열린 제7회 전통사경 개인전에서는 다채로운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날 전시된 작품은 ‘반야민다심경’을 비롯, ‘대방광불화엄경권권 제 32변상’,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관세음보살과 보문품 게송’, ‘묘법연화경권 제7관세음보살보문품’ 등의 불사경과 함께 기독교의 ‘주기도문 산마르코성당’, ‘오병이어’, ‘물위를 걷다’ 등 성경사경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선생은 “사경의 우수성은 비단 불자들에게만 알릴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인과 세계인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선생의 작품은 종교뿐 아니라 ‘5.18 민주항쟁 희생자 추모’, ‘일월오봉도’, ‘31*45cm*30의 비교적 큰 규모의 천자문’도 선보여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약사삼존도 63*39cm
약사삼존도 63*39cm

# 난원 정향자 박사 약력 및 수상

2003년 : 광주시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운영위원, 이사 역임

2005년 : 전남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2008년 : 서에문화대전 사경부문 초대작가

2009년 : 대한민국 서예·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2015년 : 원광대 대학원 한국문화학과 회화문화재 보존수복학 전공 문학박사

현) 한국미협 회원, 광주지회 회원

현) 한국사경연구회 정회원

현) 조선대 평생교육원 사경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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