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추야 추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편집국 칼럼]추야 추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0.12.21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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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한쪽 신문을 집어들었다.

온통 2개월 정직을 당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지지와 정의론 뿐이다.

<무법시대 거짓 예언자들...윤석열 박해 가세>, <윤석열 몰아낸 정권, 이젠 수사 덮을 일만 남았다>, <칼럼, 윤석열 ‘침착하고 강하게’> 등등 해드라인 제목부터 칼럼에 이르기까지 문 대통령과 정부의 비정상적인 행동(저녁 재가 등)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도배를 했다. 심지어 박해라고도 칭송했다. 추미애에 대해서는 망나니 짓이라고 표현했다.

어이가 없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토록 윤석열을 옹호하는 것인가.

왜 윤석열을 신처럼 섬기고자 하는가?

해답은 ‘기득권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민주주의고 정의고 필요없다. 그들을 지켜줄 권력에 힘을 보태 반대편을 쓰러트려 그들과 함께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심보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어떨까. 그들의 표현을 유추해보자면 부정과 불법의 대명사이자 범죄자여야 할텐데...

우리는 한때 그녀를 추다르크라 불렀다. 판사 시절부터 결기있는 활동을 보여왔고 김대중 선생으로부터 발탁되어 국회의원 활동을 할 때는 5선 의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총기를 발휘했다. 2016년~2018년 민주당 대표시절에는 탄핵을 이끌어 내며 정권의 조타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거대한 장벽을 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2020년 1월 법무부장관에 임명되어 1년 동안 초권력 집단인 검찰의 시퍼런 칼끝에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사표를 냈다. 그러자 많은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용기 있었어, 잘했어”

추다르크에 보내고 있는 국민들의 성원들이다.

추다르크는 끝나지 않는 전쟁에 물러나면서 페이스북에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란 시를 소개하며 소회를 적었다.

“모든 것을 바친다 했는데도 아직도 조각으로 남아 있습니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향한 꿈이었습니다. 조각도 온전함과 일체로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하얗게 밤을 지샌 국민 여러분께 바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꿈이지만 열망과 본분을 간직한 조각으로 남겠다는 울림이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얼음 바위산을 넘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밤새워 정호승 시인이 들려준 ‘산산조각’이란 시를 씹고 또 씹었을성 싶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호승의 시를 다시 꺼내 읽으면서 자기들 두목인 윤 총장을 직무 배재했다고 추 장관의 행위를 ‘정치적 폭거’라고 떠들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있는 검사들의 ‘모리배 행위’에 대해 뭐라고 해야 할까?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조국 장관이 왔을 때, 찍어내기를 위해 그 부인의 표창장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십 명의 검사를 동원하고 수천건의 문서를 조사하며 그 주변의 개미 새끼 한마리까지 샅샅히 훑어 먼지털이를 하던 그들의 ‘권력적 폭거’는 행동은 무슨말로 형용할 것인가?

그것이 정녕 국민이 당신들한테 부여해준 그 위엄 넘치는 검찰이었던가?

이번주에는 유난히 칼바람이 분다. 기러기 북쪽으로 울며 가는 겨울이다. 이참에 한번이라도 눈으로 뒤덮인 세상을 보고 싶다.

정호승이 들려주는 시한편을 소개한다.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중략)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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