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어버이가 머리 숙여 속죄하는 대속(代贖)을 들어봤는가?
[편집국 칼럼]어버이가 머리 숙여 속죄하는 대속(代贖)을 들어봤는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1.06.28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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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on says he’s guilty, so I am guilty

(아들이 죄를 지은 것이면 내가 죄를 지은 것이다)

“세상에! 중학교 2학년 짜리가 이렇게 학교를 온통 다 부숴버리고 아수라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이 아이는 관내 어떤 학교에도 전학갈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이 초대형사고를 쳤다는 통보를 받고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경위를 들은 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을 느꼈다. 신천지에서 큰 꿈을 이뤄보겠다고 이억만리 타지인 미국에 날아와서 힘겹게 정착하고 있는데 큰 아들이 그런 일을 저지르고 감방에 가다니...

미국 올랜도에서 자동차 정비업을 시작하여 날마다 기름때 묻은 얼굴로 살아가는 송석춘씨는 아들 시영씨가 동양인 최대의 밴덜리즘(기물파손)죄를 저질렀다고 보도한 지역신문 센티널 스타의 글을 보고 또한번 충격과 낙담을 겪었다. 온 가족이 집안에 웅크리고 통곡했다.

그뿐 아니었다. 교포들로부터 “한국인의 얼굴에 먹칠했다”는 비난은 물론이고 “자네 아들 깜빵에 갔다며?”하고 놀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미국인들 사이에도 “등하교 때 그 애 집을 피해서 다녀라”하거나 “그런 학교에 우리 아이를 보낼 수 없다”며 전학시킨 학부모까지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시영씨는 영어실력도 짧은데다 체격도 왜소하고 유일한 동양인이어서 왕따를 당했고 그 때마다 지지 않으려고 반격을 했다. 교장에게 불려가 수차례 체벌을 받기도 했다. 급기야 같이 왕따를 당하던 미국 친구와 함께 주말에 학교에 들어가 왕창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더욱 분통스런 일은 미국인 친구는 유명 변호사를 선임해 무죄로 나왔고 시영씨만 주범으로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돈 없고 고향도 아닌 설움을 뼈저리게 느낀 송석춘 씨는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어 아들의 학교로 다시 찾아갔다. 아들의 석방이나 복교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아들을 잘못 가르친 애비로서 속죄를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송씨는 교장에게 “감옥에 있는 아들의 속죄를 위해 부부와 유치원.초등학교에 다니는 네 동생들이 주말을 이용해 학교 운동장 청소를 하겠다”고 대속(代贖:대신할 대, 면죄 받을 속)의 기회를 청했다. ‘별난 아버지도 있다’고 생각한 교장은 이를 허락했고 그 가족들은 수개월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주말에 운동장 청소를 했다.

이런 사연에 감동한 학교 측이 ‘연대책임’을 느껴 속죄하는 한국인의 정신을 교훈 삼아야 한다며 AP통신에 제보했는데 담당 기자가 “가족의 명예와 아들을 위해 부모는 모른 체 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송고하면서 미국 전역의 언론사에 소개되어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감방에 있는 중2 아들을 대신하여 유치원 아이와 초등학생 동생들 넷, 그리고 부모가 그 휑하니 넓은 운동장을 쓸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기사의 큰 타이틀은 “내 아들이 죄를 지었으면 내가 죄를 지은 것이다”라고 달려있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수백통의 편지가 학교에 날아들었고 변호사비용으로 쓰라며 5불, 10불짜리 현찰과 수표가 답지되기도 했다. 각 언론사에서는 ‘아들 죄가 바로 내 죄’라는 송씨의 고백을 예로 들어 미국 사회에도 한국의 교육철학을 본받아야 한다는 기사와 논평을 내보냈다. 며칠 후에는 법정에서 아들을 방면한다는 소식이 날아왔고 교육청에서는 가까운 학교에 전학할 수 있도록 정상 참착을 베풀어주었다.

그 후 말썽꾸러기였던 시영씨는 센트럴플로리다대학을 졸업하고 미우주항공국(NASA) 산하 방위산업체 취직, 우주선을 쏘아올릴 때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전세계에 브리핑하는 최고 우주선탑제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기름때 묻은 원숭이의 미국이민 이야기>라는 책을 쓴 송석춘 씨의 실제 이야기다.

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같은 피붙이인 부모나 가능할지 모른다.

죄를 지었으면 그 책임으로 댓가를 치러야 하는게 법치주의 사회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의 댓가일 뿐, 그보다 먼저 자신의 죄로 인해 고통받은 상대의 쓰라린 통증을 아는 게 진정으로 용서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그것이 용서와 참회를 구하는 진정한 자세다.

인간을 인간이라 부르는 이유를 다시한번 생각한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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