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먼 여행길은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데...
[편집국 칼럼] 먼 여행길은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데...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1.03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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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아침이고 돌아서니 저녁이다.

월요일인가 하더니 벌써 주말이고 월초인가 하더니 어느새 월말이다.

그렇게 2021년이 흘러갔고 2022년 임인년이 벌써 우리 곁에 다가와 365일을 펼쳐놓았다.

우리들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구별에 놀러 온 개미들의 소풍이나 다름없다. 중간 기착지는 다를지라도 그 마지막 목적지는 같은,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여행의 끝을 알 수 없는 머나먼 외길 소풍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말한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첫째, 짐이 가벼워야 한다.

둘째, 동행자가 좋아야 한다.

셋째,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 조건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가?

여행이란 본디 세상 모든 것들과 부대끼며 고락의 길을 가다가 마지막 거처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과정이다. 여행길에 부착했던 화려한 치장은 그가 지나온 길의 흔적일 뿐이다. 아무리 높은 명예를 달고 부귀를 몽땅 짊어지며 앞장서 달려봤자 언젠가는 제 무게에 겨워 툭툭 털고 내려놔야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여행길의 본질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망각하고 사는 게 인생이다.

그 고단한 여행의 끝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것 3가지가 있다.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나 혼자서 죽는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리고 그 여행에 대해 모르는 것 3가지가 또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중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만은 어렴풋이 자신들이 답을 알게 된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는 거의 비슷하지만, 죽을 때는 천차만별이다. 때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용서받지 못할 사람으로, 때로는 뭇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 고귀한 삶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가 아닌 죽을 때 모습으로 평가가 매겨진다고 했다. 그 평가에 따라 영원히 사느냐 잠시 사느냐가 구별된다. 그래서 기나긴 인생 여정에 항상 염두에 둬야 할 일이 있다.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며 길을 걸어 왔는가”를 자문하는 일이다.

빈손으로 돌아갈 일에 인생을 다 쏟으며 시간을 안타깝게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10년 전인 2011년,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한 세계적인 기업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56세에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세계의 모든 언론들이 그의 사회적 공헌을 칭송하며 그를 애도했다.

하지만 혁신과 창조의 아이콘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잡스도 병석에서는 한낱 살기 위해 꿈틀거리는 미물에 불과했다. 그가 병마와 싸우면서 남긴 고언(苦言)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심금을 울린다.

“지금 이 순간,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막대한 부와 주변의 갈채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다 상실했다. 어두운 방안의 생명보조 장치에서 나오는 푸른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낮게 웅웅 거리는 그 기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죽음의 사자의 숨길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있다. 평생 배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충언한다.

“그 다른 일이란 게 돈 버는 일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다. 아름다운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꿈일 수도 있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자신을 돌보기 바란다. 가족을 위한 사랑과 부부간의 사랑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을 귀히 여겨라.”

잡스는 죽음에 임박해서 ‘부를 가져갈 수는 없으나 추억은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 깨닫고 충고했다.

밝아오는 임인년, 모두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힘들지 않기를 소망한다.

/백형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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