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탈럼] 愚問愚答(우문우답)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는가?”
[편집국 탈럼] 愚問愚答(우문우답)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는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1.17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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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의 강의가 대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불자들만을 위한 법문 같지 않는 명쾌한 속세 진단,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시원스런 박장대소, 강의가 끝난 뒤에 남은 긴 여운 등이 좌중의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강의는 대부분 인터넷 질문을 통해 주제를 정하는데 질문 가운데 가장 많은 주제가 “스님은 왜 출가하셨나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법륜 스님이 즉문즉설 시간에 응답에 나섰다.

법륜 스님이 출가하기 전, 고교시절에 공부하기가 지루해 절간에 갔는데 마침 중생들과 유달리 법문 주고받기를 좋아하신 스님과 맞닥뜨렸다. 마침 기말고사 시험을 앞두고 있던 학생 법륜은 그 스님이 붙잡으시기에 빨리 피할 요량으로 “죄송합니다만 저 오늘은 바쁩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너 어디서 왔는데?”/“학교에서요”/“그 이전에는?”/“집에서요”/“그 이전에는?”/“어릴 적부터요”/“그 이전에는?”/“태어날때부터요”/“그 이전에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겠죠~”.

“그 이전에는?”/“몰라요”/“그럼 어디로 가는데 바쁘다는 거냐?”/“도서관에요”/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는?”/“대학이요~”/“그 다음에는?”/“어른이 되고요”/ “그 다음에는?”/“늙겠지요”/“그 다음에는?”/ “죽겠죠?”.

“그 다음에는?”/“몰라요”. 그러자 그 스님이 호통을 쳤다.“어디서 온 지도 모르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녀석이 바쁘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 때 번쩍하고 머리를 두드려 맞은 학생이 바로 불가에 귀의(歸依)하여 지금의 법륜 스님이 되었더란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그리 바삐 가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왔다가는 생의 근본을 따져보는 우문우답(愚問愚答) 같지만 현문현답(賢問賢答)이 따로 없는 선문답이다.

새해가 밝은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나름 값진 설계와 이행으로 새해 첫 달을 알차게 보내는 경우도 많으리라 믿어진다. 하지만 속절없이 흐르는 게 시간이다.

삶의 도중에 한 번쯤은 우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 이유도 모르고 허둥지둥 바쁘게만 부대끼다 한 달, 두 달을 보내는 건 아닌지 뒤돌아볼 일이다.

고은 시인이 남긴, 단 두 줄의 <그 꽃>이라는 명작은 우리에게 멈춤과 다시 주변을 둘러보게 하는 여유를 선물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올 때 보지 못한 그 꽃/ 더 길 필요도 없다. 아무 군더더기도 필요 없다.

우리는 모두 외길 따라 행군하듯 무작정 앞만 보고 올라간다. 간혹 땀 흘리는 재미로 살기도 하지만 정작 옆에 어떤 사연이 널브러져 있는 지, 내가 스쳐 지나간 사람과 어떤 인연인 지, 땀 닦을 겨를도 없이 산에 오른다. 휴~ 하고 좌우를 둘러볼 때쯤이면 해가 뉘엿뉘엿 하게 됨을 안다. 그 때서야 올라오던 길을 한 숨 되돌릴 겨를도 없이 하산을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발견한 한 송이 처연한 꽃. 올라올 때 그 자리에 있던 꽃이련만 내려갈 때

비로소 꽃으로 보이는 하산 길의 만남이다.

바라볼 때 비로소 생명이 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사랑도 그렇고 희망도 그렇다. 수많은 별이 반짝여도 바라볼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영도 작가의 소설 '드래곤 자라'에서 이렇게 읊는다.

“밤하늘은 어둡고 주위는 차가운 암흑뿐이지만,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주지요.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 존재하는 별빛 같은 존재들이지. 보이지 않는 빛이지만 서로를 바라볼 때 비로소 영롱한 빛을 뿜어내지요”

이제부터 하루 한번이라도 멈추고 바라보면 세상이 별이 되어 다가올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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