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있어야 할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 최현웅 기자
  • 승인 2022.02.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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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양봉농가 절반, 26만 군 중 10만 군 ‘한 겨울에 실종’

“병충해라면 사체라도 남는데...” 원인 몰라 더욱 ‘답답’
반성진 한국양봉협회 전남지회장이 서삼면 송현리 양봉농장에서 텅 비어버린 벌통을 들여다 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반성진 한국양봉협회 전남지회장이 서삼면 송현리 양봉농장에서 텅 비어버린 벌통을 들여다 보며 허탈해하고 있다.

“40년 동안 벌을 키웠는데 벌통에 벌이 한 마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장성군 서삼면 송현리에서 400군(통)의 양봉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반성진(72) 한국양봉협회 전남지회장은 텅 비어 있는 벌통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꿀벌은 겨울철 벌통 안에서 월동하는데 1월 들어서 잠자던 벌을 깨워 먹이를 주는 ‘봄벌깨우기’를 하려고 봤더니 벌이 사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반 지회장은 “최근 수년간 꿀벌의 개체수가 줄기는 했지만 올해처럼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적은 없었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벌통의 벌들을 확인했는데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 허탈하기 그지없다”며 참담함을 토로했다.

반 지회장은 꿀벌들이 지난해 12월에서 올 1월 사이 갑자기 벌통을 떠나버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반 지회장에 따르면 장성 관내 200여(양봉협회 가입 70농가) 양봉농가 중 절반 이상인 100여 농가가 피해를 입었으며 이들 농가의 피해 규모만 4,000여 군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꿀벌 실종 사태는 장성뿐 아니다. 올겨울 해남 등 전남 서부권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 전남 곳곳으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양봉협회 전남지회는 지난 1월부터 양봉협회 회원들과 비회원 농가를 대상으로 실태 파악에 나선 결과 전남에서만 도내 2,000여 양봉농가 중 900여 농가, 벌통도 26만 군 중 10만 군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전남 뿐 아니라 광주 2만, 전북 6만, 경북 7만, 경남 11만 군 등 전국에서 이 같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문제는 꿀벌의 집단 실종 원인을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양봉농가의 피해가 확산되자 농촌진흥청과 농립축산검역부는 지난달 한국양봉협회 측으로부터 원인조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해남과 영암, 여수 등 서남부 지역의 양봉농가를 대상으로 원인 조사를 했다.

진흥청과 검역부는 낭봉충아부패바이러스, 날개불구바이러스, 가시응애감염증 같은 병충해 피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병충해라면 벌통 주변에 죽은 벌이 있어야 하는데 전남에만 10만여 군에 달하는 벌통이 텅 비었으니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밖에 원인으로 이상기후, 약제과다 등으로 추정하지만 뚜렷한 원인은 찾지 못하고 있다.

반 지회장도 “벌통에서 벌들이 사라진 흔적을 찾아 사체로 남아있던 벌을 김천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보내 폐사 원인을 조사했으나 검역본부 측은 원인불명이라는 답변을 해왔다”고 밝혔다.

양봉농가들은 큰 일교차 등 기후변화와 드론을 이용한 광역 고농도 농약살포, 외래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만 할 뿐 이들 역시 원인파악도 못하고 있다. 다만 어느 경우이든 인간이 초래한 환경 재앙일 가능성이 크다는데 입을 모은다.

반 지회장은 “꿀벌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어 꿀벌이 사라지고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원인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양봉농가의 피해가 속출하자 전남도는 2월 중순 도내 22개 시군에 공문을 보내 피해 현황조사에 착수해 이달 말까지는 피해상황을 취합해 피해구제에 나설 방침이다.

장성군 축산과 관계자도 날이 풀리는 3월 초에 양봉협회장성군지부와 함께 피해농가에 대한 현장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반 지회장은 “최근 관내 양봉농가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고, 일부 농가들은 극단적인 생각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이번 피해를 본 농가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낭봉충아부패(바이러스)병 같은 2차 피해가 없도록 조속한 입식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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