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구시화문(口是禍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 했다.
[편집국 칼럼] 구시화문(口是禍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 했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5.02 14: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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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체 중에서 귀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랴만 입 만큼 중요한 기관이 없다.

먹는 즐거움에 활용되면서, 의사표시에 수단인 말하는 기능도 담당하기 때문이다.

눈, 코, 귀 등 신체의 각 기관은 한 가지 업무를 담당하지만 입은 동시에 두 가지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 두 가지 역할은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입으로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도 있지만 독초를 먹을 수도 있다. 또 입으로 남을 격려하고 배려하여 상대를 살려낼 수도 있지만 상대의 허물을 폭로하여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컬어 구시화문(口是禍門: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 했다.

10세기, 당나라가 망하고 난 뒤 생겨난 후당 때에 입신하여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 882~954)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근면 성실했고, 문학에도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마침내 45세에 이르러 그의 박학다식과 원만한 인격을 인정받아 재상에 발탁된다. 그는 이후 5왕조(후당 ·후진 ·요 ·후한 ·후주)를 거치면서 8개의 성을 가진 11명의 천자를 섬기며 30년 동안 고관 벼슬을 누렸고 20년 동안 재상을 지냈다.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재상으로 재직할 때 큰 다툼 한번 없었다고 전해진다. 처세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풍도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현실정치에 순응하여 새 왕조를 도왔는데 이를 두고 지조 없는 정치가라 비난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황제를 섬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섬긴 것”이라는 신념을 지켰다. 천자가 누가 되든 만백성이 편안한 나라를 위해 봉직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어떻게 그런 처세의 달인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런 정치적 소신만으로 재상을 그토록 오래 할 수 있었을까?

풍도는 자기의 처세관을 다음과 같이 몇 구절로 표현했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입은 재앙을 불러 들이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안신처처우(安身處處宇)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풍도는 인생 살이에서 입이 절대적 화근(禍根)임을 깨닫고 73세를 누리는 동안 혀를 감추고 입조심 하며 살았다.

잘못 열고 닫다가 패가망신하는 입이란 무엇인가?

입은 음식물이 들어가는 입구이다. 음식물이 입에 들어감으로써 생명의 원천인 에너지를 확보하여 생명을 유지토록 하는 창구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 만사가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다. 입은 복도 들어오지만 화도 들락거리는 문이다.

고금의 역사를 돌아보면 말로 인해 재앙이 초래된 경우가 많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듣던 조상들의 경고였다. 이 말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시와 때를 가리지 말고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특히 고의로 내뱉는 말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선거는 불꽃 튀는 말의 대결장이다. 선거는 상대를 누르고 내가 이겨야 살아남는 전쟁터로 비유된다. 그래서 모든 지혜와 정보를 다 동원한다. 상대의 흠결을 있는대로 파헤치고 폭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발표가 아닌 ‘카더라’ 식 유언비어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 빠른 속도로 퍼져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아무리 상대를 쓰러트려야 할 목적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인간으로서 금기시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을 잘못 건드리면 치명적인 공멸(共滅)을 불러오게 된다.

심심창해수(心深滄海水)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 씀씀이는 창해수처럼 깊어야 하고 입은 곤륜산처럼 무거워야 한다"는 말이다.

공멸이 아닌 공생을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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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기 2023-09-28 04:49:36
깊이 새겨 간직하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