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인간 고약해(高若海)를 아십니까?
[편집국 칼럼] 인간 고약해(高若海)를 아십니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5.09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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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어이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을 때 ‘고약한지고~’ 또는 ‘고약한 놈일세~’란 말을 사용한다. 이런 말들은 ‘고약해’가 뿌리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고약해(1377년~1443년)가 일상 언어가 아니라 조선 초기 유능한 고위 관료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찌해서 인간 고약해가 고약한 행동의 상징어로 정착됐을까?

고약해는 조선 건국 이듬해인 1392년 성균시에 합격한 뒤 세종대왕 시절에 쟁쟁한 고위 관직에 몸을 담는다. 예조참의와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한성부윤, 형조판서, 대사헌을 지냈다. 오늘날의 직제로 본다면, 한성부윤은 서울특별시장, 대사헌은 감사원장 격이니 최고 요직을 거친 셈이다.

하지만 재임 기간에 탄핵에 휩싸이기도 하고, 형벌을 뒤집어 쓰기도 하며, 파직과 복직을 거듭한 문제의 인물이었다.

세종대왕 시절, 직언이나 간언을 서슴치 않았는데 어쩔 때는 왕과 신하의 관계라고 상상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핏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격구를 좋아했다. 그런데 고약해는 임금의 취미인 격구의 폐지를 강력히 주청한다. 그것도 거의 한 해 한번 꼴로 다섯 차례에 걸쳐 끈질기게 청을 올린다. 고약해 주장은 “격구는 군사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 놀이일 뿐이며 더구나 임금이 그런 놀이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세종은 취지는 알겠으나 마구 들이대는 고약해의 논리와 행동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점잖게 말한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즉 알았으니 정도 껏 하라는 뜻이었다. 천하의 성군인 세종대왕도 심기가 극도로 불편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약해의 왕과 신하의 도를 넘는 또다른 행동의 하나가 나타난다.

세종대왕은 폐세자당한 친형 양녕대군을 제거해야 훗날 후환이 없을 것이라는 산하들의 건의를 무시하고 양녕을 배려해주었다. 그런데 양녕의 도가 지나치자 고약해는 양녕의 죄를 추궁하고 벌을 내리라고 간언한다. 그것도 수차례 반복했다.

계속되는 간언에 넌덜머리가 난 세종대왕은 말한다.

“성인이 말씀하시길 신하가 세 번을 간해도 왕이 듣지 않으면 벼슬을 물러난다고 했다. 너희는 과인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데도 왜 벼슬을 그만두지 않는 것인가?”

‘내가 싫다면 그만두라’는 노골적인 왕의 뜻을 알아차린 고약해는 별 수 없이 벼슬을 던지고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곧 복직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세종대왕은 관료들의 근무지 순환임기에 대해 예전의 수령삼기법 대신 수령육기법을 도입키로 했다. 수령삼기법은 관리들이 서울에서 1년 반 근무한 뒤 지방에서 1년 반 근무하며 3년 임기를 채우는 방식인데 너무 재임 기간이 짧아 가정생활이 어렵다고 판단, 배로 늘려 삼년 씩 6년을 근무하도록 한 것이다.

세종은 이 문제를 두고 신하들과 격론을 벌이게 되는데 고약해가 세종대왕의 말을 끊고 끼어든다. 심지어 ‘소신이 생각할 때~’라고 말해야 옳음에도 불구하고 ‘소인이~’라고 내뱉음으로써 왕의 지위를 깎아 내렸다.

열 받은 세종대왕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어찌 감히 말에 끼어드는 것인가”라고 불호령을 내리자 고약해는 “신하의 간언을 듣지도 않고 되려 간하는 신하를 나무라니 실망스럽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백성을 하늘로 알고 다스리던 천하의 성군 세종대왕도 분개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었다. 곧바로 도승지(지금의 청와대비서실장)를 불러 ‘고약해가 수령육기법으로 지방에 나가게 되자 (자기 편하기 위해)그러는 것 아니냐’고 묻자 도승지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고약해의 탄핵을 서두른다. 그러자 사간원에서 다시 탄핵 반대상소가 올라온다.

“일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말을 잘못해서 탄핵 당한다면 누가 임금에게 바른 소리를 하겠는가?”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도 이 일만큼은 그냥 넘길 수가 없어 고약해의 관직을 삭탈한다. 신하와 사사건건 이해 충돌이 언짢은 차원을 넘어 불충에 이르렀다고 본 것이다.

제아무리 성군이었던 세종대왕도 직언이나 간언을 일삼은 신하를 대할 때 편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신하를 대할 때 ‘고약해 같은 사람’이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새 지도자를 맞는 지금, 고약해 같은 강직한 신하가 필요하지만 그 곧음을 알아주는 성군이 있어 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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