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수호신 당산나무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동네 수호신 당산나무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2.09.0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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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씩이나 팔릴 운명에서 자리 지킨 200여년 팽나무

삼서면 수해리 2구 상죽마을...‘조경업자 죽고 뇌경색’
가지가 싹둑 잘린 채 두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 신죽 마을 당산나무. 주민들은 추억이 담긴 당산나무가 이곳에 유지되길 바라고 있다.
가지가 싹둑 잘린 채 두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 신죽 마을 당산나무.
주민들은 추억이 담긴 당산나무가 이곳에 유지되길 바라고 있다.

옛날부터 당산나무는 신령스런 나무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런 금기를 어기고 당산나무를 팔려다가 낭패를 당한 사례가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장성군 삼서면 수해리 2구 상죽(신죽)마을에 약 수령 2백여 년의 아름드리 팽나무가 서있다. 주택가 뒤편 대나무밭 가운데 서 있는 이 당산나무는 예부터 마을민들의 정신적 위안이었고 아이들의 어린시절 추억이 머물던 나무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인구가 줄어 10가구 밖에 살지 않게 되고 당산나무 존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자 밭주인인 A씨는 수년전 사업자에게 이 당산나무를 팔았는데 나무를 산 계약자가 갑자기 서거했다. 다행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세월이 흘러 당산나무 옆집 주인 B씨가 측량을 했는데 측량 결과 자기 땅에 당산나무가 서 있었던 것이다. 당산나무 주인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나무 권리자임을 확인한 B씨는 당산나무가 우거져 집과 밭에 그늘이 생겨 농사에 지장을 주게 되자 다른 조경업자에게 팔았다. 이 조경업자는 이식하기 위해 큰 가지를 잘라내고 도랑을 파놓고 이식 시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뇌경색이 왔다.

비록 지금은 주요 가지가 잘린 채 몽당자루처럼 윗부분만 무성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또다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나무 운명도 기구하지만 나무 주인의 운명도 애처롭다.

A씨와 B씨는 아버지가 형제간인 사촌이었다. 큰 아버지가 6.25때 사망하자 작은집이 큰집으로 양자를 들어와 오순도순 살았다. 그러다가 최근 분가로 주택과 전답을 나누어 증여하는 과정에서 당산나무까지 주인이 뒤바뀌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최근 추석 벌초 작업 때문에 고향마을을 다녀간 상죽마을 출신의 정창환(63)씨는 “당산나무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 오래오래 서 있기를 기원하며 막걸리를 부어놓고 빌었다. 우리들의 추억이 담긴 것처럼 우리 후손들의 추억도 만들어 주기를 기원했다. 인간의 욕심에 흔들리는 나무의 운명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상죽마을 어르신 권동수 씨(87)는 “원래 당산나무를 안 건드려야 한다. 그러다가는 다칠 수 있다. 마을 수호신이기 때문이다. 소유자가 누구든 팔지 않고 동네를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동네 어귀에 든든히 자리를 지키며 반갑게 맞아주는 당산나무는 보통의 나무가 아니라 마을에 들어오는 악귀를 물리치고 평온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영험스런 대상으로 바라보았던 조상들의 풍습이 새삼 경각심을 주고 있다. 자연에도 생명과 존엄성이 있다. 인간이 욕심으로만 자연을 바라보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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