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 "승자의 바둑돌은 전에 패자가 두건 돌이다" (勝者所用 敗子棊)
편집국 칼럼 / "승자의 바둑돌은 전에 패자가 두건 돌이다" (勝者所用 敗子棊)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1.02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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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기원은 정확치 않지만 문자가 생기기 전인 4300년 전, 고대 중국 전설의 시대인 3황5제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인 5세기~7세기에 소개됐다.

전통적인 대중 놀이문화로 즐겨왔으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뒤 스포츠로 자리 잡으면서 귀족 문화로 등극했다.

그러다가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AlphaGo)라는 인공지능 바둑이 2015년에 등장하여 2016년 3월 세계 최강이라는 프로기사 이세돌 9단과 대결하여 승리함으로써 인공지능의 무서움을 실감케 했다.

바둑은 장구한 세월을 인류와 함께하면서 무수한 승패의 경우 수를 만들었고 그 때마다 상황을 말해주는 명언, 명구들을 낳았다.

중국에는 바둑 둘 때 마음에 새겨둘 10가지 교훈을 일컫는 ‘위기십결’이라는 비결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 즉 ‘너무 이기려고 욕심내지 말라’는 충고였다.

일반인들도 흔히 쓰는 용어로 소탐대실(小貪大失: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다)이라는 말과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내가 살고 난 후 상대를 잡으러 가라)라는 말이 있다. ‘적의 급소가 나의 급소’란 말과 ‘큰 곳보다 급한 곳’이란 말, 그리고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도 대표적인 바둑 격언 중에 하나다.

한 때 일본 바둑계를 휩쓸었던 바둑의 전설 조치훈 9단은 바둑에 임하는 자세를 말하면서 “나는 언제나 목숨을 걸고 둔다”고 말했다. 조치훈은 “앞으로 나아가다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나타난다면 그 벽에 손톱자국이라도 내고 물러 나와야 한다”고 불굴의 승부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의 바둑의 원조로 불리는 기타니 9단은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란 명언을 남기기도 했고 다카가와 9단은 “유수불쟁선,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며 조급한 승부욕을 경계하기도 했다.

10년 전, 한국 바둑의 최강자였던 이창호 9단은 “중요한 승부에서 패하고도 마음이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은 이미 프로가 아니다. 늘 승리자가 될 수는 없지만 패자의 역할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바둑은 가로 세로 19줄의 반상 위에 흑돌과 백돌로 자기 집을 확보하는 전쟁터다.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사각의 링이다. 무승부란 있을 수 없고, 승자와 패자가 명백히 갈라진다.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나에게 도전하는 적을 쓰러트려야 한다. 수 없는 공격과 방어를 거듭하며 생사를 넘나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수십 수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바둑은 한판이 끝나면 패배의 설욕을 딛고 절치부심, 새로운 판에서 만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성공을 했든, 실패를 했든 드라마 같은 무대가 끝나면 새로운 도전장인 제2막으로 들어가게 되는 인생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유명한 바둑 격언으로 ‘승자소용 패자기(勝者所用 敗子棊)’라는 말을 남겼다. 해석하자면 ‘승자가 사용한 돌은 예전에 패자가 쓰던 돌이다’라는 뜻이다. 심오한 이치가 담겨 있다.

바둑은 같은 면적에서 같은 수의 돌을 가지고 전쟁을 하지만 장수의 능력에 따라 승패가 나눠진다. 바둑판과 돌은 언제나 똑같은데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 장수에 따라 승패가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일정 면적과 국민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하는 국가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같은 나라, 같은 백성을 두고 통치하지만, 현명한 신하들과 함께 선정을 베풀어 성군이 되기도 하고 어리석은 자들과 가까이 하여 나라를 망친 폭군으로 남기도 한다.

우리에겐 4년마다 책임을 묻는 선거가 있다. 4년은 당선자에게 능력 발휘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지역의 흥망을 가리는 중요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 4년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정치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4년 정도는 훅 간다’고 표현한다.

세상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법이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곳이 바로 권좌다.

‘있을 때 잘해’란 말이 실감난다. 잘 해야 한다.

그것은 주변을 고루 잘 살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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