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법정 스님의 無所有...축령산에 있을까?
편집국 칼럼/ 법정 스님의 無所有...축령산에 있을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5.30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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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고도로 침잠하게 만든 화두가 있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가진 것과 갖지 못함, 집착과 놓음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가지면서 삶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철학적 번뇌를 되뇌게 했다.

그것은 바로 2010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 사상이었다.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국민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욕망의 그늘에서 잠시 쉬게 만들었던 화두였다.

법정 스님이 그토록 강조했던 무소유는 정말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소유에 어디까지라는 경계를 갖고 있는 것인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의미를 곱씹어볼 ‘무소유’ 원본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처럼 소유와 무소유의 도해도(圖解圖)를 그리고 있다.

이같은 설명과 더불어 또다른 개념의 의미가 귓전을 울린다.

선인들의 화두 중에 방하착(放下着)이란 게 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 또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 것’을 말한다. 방하(放下)는 ‘손을 아래로 내려뜨리다, 버리다’는 의미고 착(着)이란 말은 그냥 어조사다. 그냥 턱 하니 버리라는 강조 의미다. 두 글자를 합하면 우리 마음속에 얽혀 있는 온갖 번뇌, 갈등, 스트레스, 원한, 욕망 등을 완전히, 깡그리 벗어 던져 버리라는 충고다. 그냥 버리라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털털 털어 없애버리라는 강조적 의미다. 어쩌면 놓아버렸다는 의식까지도 놓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선문답 속에서 이처럼 방하착을 실행하지 못할 바에는 그 ‘차라리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거라’는 반대말로 착득거(着得去)라는 말을 붙여준다. 염원하는 목적을 이뤄 앞으로 가되 아주 등짝에다 가득 짊어지고 낑낑거리고 가라는 빗댄 충고다. 착이란 말은 착 달라붙게 하라는 강조의 뜻을 지닌 어조사로 해석된다.

방하착과 착득거를 살펴보면 우리네 두 갈래 삶을 한 장의 시사만평으로 표현한 듯한 영감이 떠오른다.

그 만평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고 있다. 빈 몸이 아니다. 각자가 짐을 짊어지고 힘겹게 간다. 쉴 줄도 모르고 내려놓을 줄도 모른다. 그러다가 마침내 도착 지점에 가서야 문득 허무의 짐을 지고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들여다보자.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 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법정 스님은 그렇게 무소유의 사상을 실천하며 열반에 들 때에도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장례식을 하지 마라. 수의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관도 짜지 마라. 강원도 오두막의 대나무 평상 위에 내 몸을 놓고 다비해라. 사리도 찾지 마라. 남은 재는 오두막 뜰의 꽃밭에 뿌려라.”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진 법정이 남긴 무소유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어떤 부 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열반에 드신 지 13년이 흘렀지만 법정 스님이 남긴 유언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생생히 살아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고 거역하지 않을 뿐.

올해는 2566년 부처님오신날이다. 고려시대 관불암의 명성을 기억하며 서삼면 축령산 중턱의 묘현사를 찾는다.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온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한다. 인연으로 맺은 모든 분들이 심처개은(尋處皆恩) 찾는 곳마다 은혜롭고, 주처개복(住處皆福) 머무는 곳마다 복 되시는 만유화평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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