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부처가 되는 길, 참 쉽다
[편집국 칼럼] 부처가 되는 길, 참 쉽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6.05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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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기억이 아련하여 잊어버렸을까?

동화책에서 봤던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 말이다.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 주었더니 사슴은 은혜의 보답으로 선녀들이 목욕하고 있는 곳을 일러 주며 어느 선녀의 깃옷을 감춰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게 하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옷을 보여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슴이 일러 준 대로 선녀의 깃옷을 감추었더니 목욕이 끝난 다른 선녀들 모두 하늘로 날아 돌아갔으나 깃옷을 잃은 한 선녀만은 가지 못하게 되고 나무꾼은 그 선녀를 데려다 아내로 삼는다. 아이를 둘까지 낳고 잘 살던 어느 날, 사슴의 당부를 잊어버리고 나무꾼이 선녀에게 깃옷을 보이자 선녀는 입어 보는 체하다가 그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승천해 버린다. 슬퍼하던 나무꾼을 보자 사슴은 또다시 하늘에서 내려오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게 하여 행복을 찾아간다>

한.중.일 어느 곳, 어느 마을에서도 나타나는 설화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은 바로 사슴이다. 슬픈 동물로 묘사되면서도 보은(報恩)을 아는 영특한 동물이다.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먼저 목놓아 운다고 한다. 슬퍼서가 아니다.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동료 사슴들을 불러 먹이를 나눠 먹기 위해 우는 것이다. 보통 동물은 먹이를 발견하면 빼앗기지 않기 위해 으르렁거리거나 먹이를 갖고 튀는 게 당연하지만 사슴만이 먹이를 발견하면 함께 먹자고 동료를 부르며 운다.

이 사슴의 울음소리를 녹명(鹿鳴)이라 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소리로 비유했다. 중국의 최고 시문집 ‘시경’(詩經)에도 녹명은 상서로운 경지를 대변할 때 항상 등장했다. 녹명지연(鹿鳴之宴)이란 고사성어도 있다. 임금과 지방에서 올라온 어진 신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녹명이란 시를 읊는 연회를 말한다. 사슴 무리가 서로를 양보하며 평화롭게 울며 풀을 뜯는 풍경을 어진 신하들과 임금이 함께 어울리는 것에 비유했다.

오늘날 녹명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경제 지상주의에 빠져 내 이익만을 위해 더불어 사는 것을 잊어버리는 인간의 군상들을 사슴과 대비시키고자함이다.

녹명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자 하는 상생과 나눔의 마음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돌보는데 늙어가는 부모님을 양로원에 내동댕이치고 한번도 찾지 않는 풍토를 말함이며, 내 이익을 위해서는 친구 동료는 물론, 부모 형제까지 난도질하는 현실을 말함이리라.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보호하면 그 남이 결국 내가 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로를 지켜주고 함께 협력하는 것은 내 몸속의 이기적 유전자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약육강식으로 이긴 유전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를 한 부류가 더 우수한 형태로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기심보다 이타심, 내가 잘살기 위해 남을 먼저 도와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상생의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 내린다.

세상에는 이루 셀 수도 없는 소리들로 넘쳐난다. 개도 울고, 닭도 울고, 심지어 하늘과 바람도 운다. 좋아도 울고, 슬퍼도 울고, 이별에 울고, 감격에 겨워도 운다. 시인 조지훈은 울음이란 지극한 마음이 터지는 궁극의 언어라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지극한 울음일터인데도 불구하고 사슴의 울음만큼 아름다운 울음이 또 있으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우리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 한다. 다른 사람의 이로움을 나의 이로움으로 삼는 것이다. ‘자리이타’는 남도 이롭게 하면서 자신도 이롭게 하는 최고의 삶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자리이타를 원만하고 완전하게 수행한 이를 부처라 했다.

부처의 길에 도달하는 너무 원대한 망상까지는 이르지 말자.

그러나 나만 배불리 먹고 살자고 남의 밥을 훔쳐 가지 않아야 한다는 자세는 가질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이 바로 부처다. 부처가 되는 길, 어렵고 험할 것 같은데도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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