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불평등한 세상을 꿈 꾼 사람들 오시라고?
[편집국 칼럼] 불평등한 세상을 꿈 꾼 사람들 오시라고?
  • 장성투데이
  • 승인 2023.06.12 10: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큰 스님이 법문을 하는 도중에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지팡이를 턱 하니 땅에 꽂아놓고 수도승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여기 이 지팡이를 손도 대지 말고, 톱이나 칼을 사용하지 않고 작게 만들어 보아라”

화두를 받은 모든 수도승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법을 찾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사흘이 지난 어느날 한 스님이 앞으로 나아가 삼배를 올리며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스님은 큰 스님의 지팡이 옆에다 훨씬 더 큰 지팡이를 꽂아 놓고 물러났다.

그제 서야 큰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그렇다. 네가 해 냈구나”하고 법문을 이어갔다.

“원래 길고 짧음은 없었다. 많고 적음도 없었다. 그냥 그 자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거기다가 잣대를 들이대고 크다 작다, 내 것보다 많다 적다를 가려왔다. 그 기준 때문에 더 남의 것을 탐하고, 적음에 괴로워하여 불행에 이른다.”

큰 스님의 법문이 바로 장단상교(長短相較)다. 노자에 있던 말인데 길고 짧음은 상대적 관계에서 비교되어 나온다는 뜻이다.

길고 짧음. 크다는 것은 어디서 어디까지고, 작다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어떤 것을 크다고 말하고 어떤 것을 작다고 말할 것인가. 큰 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그 자체는 어떤 달라짐도, 변함도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비교가치의 결과로 장단이 가려질 뿐 그 본질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지난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건립되는 한 고급 아파트 분양 광고에 “언제나 평등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를 문구를 내걸어 논란을 빚었다.

한국에서 최고로 잘 사는 동네에 들어서는 아파트답게 부티 나는 광고 문구를 만든 결과물이었다. 73가구를 분양하는데 가구당 분양가가 100억~400억 원에 이른다는 소문이다. 그야말로 국민의 0.001%에나 해당 되는 최고 갑부 층이 아니면 거들떠 볼 수도 없는 가격이다.

광고 문구를 곱씹어본다. 씹을수록 입맛이 쓰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고?

누가? 잘 사는 사람들이?

그러자 한쪽에서 헛기침과 손가락질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래 인마, 잘 살려면!

그런 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을 모르는 겨?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결국 이 아파트 시행사는 자사 홈페이지에 ‘의도치 않았지만 신중하지 못한 표현으로 불편하게 만들어 고개 숙인다’고 사과문을 냈다.

하지만 그 뒷맛이 영 개운하질 않는다. 입안에 쓴맛도 그대로다.

평등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평등한 세상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한다는 뜻이자 나만이 우뚝 서는 세상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만인이 같은 존귀함을 가진 인간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의식을 저버린 이탈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들에겐 ‘한쪽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양쪽이 모두 이득을 주고받는’ 호혜정신(互惠精神)은 아주 불필요한 산물이다.

문제는 불평등의 결과가 일시적 일신의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건강한 가족공동체, 마을공동체, 사회적공동체 형성에 치명타를 입혀 종국에는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면 다’라는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 사조가 우리 세상을 휩쓸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들이 맹신하는 돈은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게 하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자본주의를 전제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어떤 경제적 활동도 보장되며, 어떤 영리추구의 자유도 보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많다는데 어떤 이의도 제기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꼭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천민자본주의가 그토록 꿈꾸는 돈은 원래부터 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남들의 것을 긁어모아 축적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의 부의 원천은 타인의 불평등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착취의 징표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만의 잔치판을 벌여놓고 불평등을 꿈꾸는 천민자본주의자들이 사는 공간을 만들어 놓을 테니 와보시라고 광고하고 있다. 그들끼리 모여 사는 아파트엔 평등한 행복이 가득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