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천상병 시인에게 !
[편집국 칼럼] 천상병 시인에게 !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7.27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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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비 내리는 날, 그 많던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괴짜 천재 천상병(1930~1993) 시인의 시 가운데 <새>라는 시가 있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

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1970)

그의 나이 40에 내놓은 시다. 생의 의지가 한창일 때 벌써 고독과 죽음과 그 너머를 이렇게 처절하게 읊었다. 어쩌면 그 자신을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한 용어의 하나가 바로 새였다.

천상병은 걸인의 시인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상대를 다녔으니 대단한 천재였다. 1956년, 《현대문학》지에서 집필을 하기도 했고 외국 서적 번역일을 하면서 생활했으나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꿨다. 1960년대에는 서울 명동 거리를 드나들며 또래 문인들과 어울리며 문학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일정한 거처가 없어 지인들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기도 하고 여인숙에서 묵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7년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 일명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전기고문을 당하고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는 평소에 친구들한테 푼돈을 뜯어 막걸리를 마시곤 했는데 그 친구 중 한 명이 동독에 드나들었던 관계로 ‘간첩과 접선했다’는 죄목을 씌워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것이다. 선고 유예로 석방됐지만 전기 고문으로 심신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당시 고문의 여파로 인해 체중이 40kg까지 줄었고 성기능을 잃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으며, 치아가 대부분 빠져 버렸을 뿐 아니라 말을 더듬는 버릇까지 생겼다.

1971년에는 무연고자로 오인 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됐다. 걸인의 행색에 치아가 다 빠진 노인네였기에 행려불자로 처리돼 실종자가 됐다. 그러자 친구들은 거리를 떠돌다가 객사한 것으로 보고 그의 작품들을 모아 유고시집 <새>를 출간했다. 그 유고집의 대표 시가 바로 <새>다.

다행히 그 유고집이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병원에 수용돼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존이 확인되고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 때 병원에서 여동생의 친구인 문순옥(1935~2010)을 만나 결혼하고 보살핌을 받으면서 오랜 방랑생활이 끝을 맺는다.

천재 걸인의 행각은 한국 문학사에서 길이 빛나는 일화로 자주 등장한다.

천상병은 생전에 지인들에게 ‘안다는 명목의 세금’(?)으로 500원, 1,000원씩을 받아내곤 했다. 70년대에는 100원, 500원씩 받았으나 80년대 이후에는 1,000원~2,000원으로 늘었다. 꼭 지인한테만 받았다. 결혼한 사람에게는 1,000원, 결혼 안 하면 500원씩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천상병을 잘 알고 있었기에 돈을 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천상병이 걷어간 돈은 대부분 술값으로 소모되었다. 한번은 평소 친하게 지낸 김동길 교수가 매일 술을 마시니까 이왕이면 좋은 술을 마시라고 비싼 조니 워커 위스키 한 병을 선물했는데 다음에 물어보니 “교수님이 주신 그 비싼 양주에는 입도 대보지 못했다, 아내가 비싼 술이니까 팔아서 막걸리나 사서 마시라고 해서 팔아서 막걸리를 마셨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부인 문순옥이 서울 인사동에서 찻집 ‘귀천’을 운영하자 문인들이 몰렸는데 그곳에 자주 다니던 지인들이 천상병에게 ‘빌린 돈을 언제 갚을 거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허허, 내가 죽으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을 테니 오거든 갚을 만큼의 공짜 술을 주겠네.”

너털웃음을 던져주는 이 농담은 그가 남긴 <귀천>이란 시와 꼭 닮은꼴이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7월의 끝자락, 한 달 내내 궂은비가 멈추지 않는다. 장마가 길면 스트레스가 늘고 살인과 자살이 증가한다고 한다. 사람도, 짐승도 마찬가지리라. 빗속에 그 많던 새들은 어디 갔을까. 어느 새벽 햇살에 산안개가 스멀스멀 사라지면 힘찬 날개짓으로 돌아올까.

삶이란 이슬과 노을과 구름과 손잡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라는 천상병의 외침이 생각난다.

맑은 하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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