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8.15광복절,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목놓아 부른다
[편집국 칼럼] 8.15광복절,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목놓아 부른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8.14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만에 서고에서 책을 집어든다.

제목은 ‘도산 안창호’, 저자는 춘원 이광수다. 40년 전인 1983년, 서울 흥사단출판부에서 발행했다. 내일 모레가 광복 78주년인 까닭에 도산의 생애를 다시 기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펴기도 전에 평전의 대상인 도산과 저자 춘원과의 관계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개화기 천재 문학가였지만 친일파로 변절한 춘원 이광수(1892~1950)는 최고의 우국지사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책은 춘원이 본격적으로 변절하기 전의 저술이라 도산 선생의 생애를 사실대로 적고 있다. 오히려 최고의 문장으로 엮어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산은 춘원을 가장 아끼는 애제자 겸 후계자로 생각했다.

도산은 우리 역사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참 애국자였다. 필자 생각으론 충무공 이순신 이후에 오백년 단위로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인물이다.

캄캄한 조선 땅에서 최초로 대중연설회를 연속 개최하여 세계 대세를 논하고 정치를 잘하고 못하는 일과 국가의 나아갈 길과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역설했다. 이 때가 1898년, 도산의 나이 20세 때다. 도산은 평양과 관동 곳곳에서 만민공동회를 열고 그 자리에 모인 수백명을 감동시킨다.

“힘이다. 독립 할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란 무엇이냐? 국민이 도덕있는 국민이 되고, 지식있는 국민이 되고, 단합하는 국민이 되어서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남에게 멸시를 아니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국민이 되는 길은 무엇이냐? 국민 중에 덕있고 지식있고 애국심있는 개인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길은 무엇이냐? 우선 나 자신이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덕있고 지식있고 애국심있는 즉 힘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 나라는 그만한 힘을 더하는 것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그의 연설은 조국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는 일제에 맞서 일어나라는 양심의 회초리가 되어 온 국민에게 주먹 불끈 쥐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도 힘이 없어 남을 힘있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도산은 청운의 뜻을 품고 1902년 미국 유학을 떠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상륙한 지 얼마 안 되어 한국 동포끼리 상투를 잡고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알고 보니 동양인 밀집지에서 장사하면서 서로 인삼 판매권역을 침범했다는 이유였다. 이를 계기로 한인사회를 조사해본 결과 수준이 엉망인 것을 보고 ‘우리 민족의 우매함이 문제다. 이래 가지고는 독립국민의 자격이 없다. 동포들이 문명한 국민다운 생활을 하도록 수준을 끌어 올려야 한다. 그래야 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인은 독립국가를 경영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나라를 되찾는 첫 길이다’며 동포들의 계몽운동에 분골쇄신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미국 곳곳에서 한인들의 의식주 계몽운동에 앞장선다. 집안 가꾸기와 불결한 골목 청소, 식사문화개선 등을 지도해 나갔다. 만리타국에 나와 있는 주변 몇백 명의 무식한 한인들부터 민족정신의 기초를 깨워주기로 한 것이다. 가는 곳마다 민족의 단합을 말했고 결사체를 만들어 나갔다. 그의 민족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흔히 말하는 빛나는 정치운동이나 혁명운동이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도산은 한국의 간디와 같은 인물로 변해갔고 동포들은 그를 따랐다.

조선에 돌아와 평양에서 대성학교를 세워 학도들을 가르칠 때 교육 방침은 ‘애국심 있는 국민 양성’을 내세웠다.

도산이 말하는 건전한 인격이란 무엇인가? 참됨으로 중심을 삼고 거짓말이 없고 속이는 행실이 없는 것이다. 약속을 어기는 것, 시간을 아니 지키는 것을 허위의 실천이라고 보았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을 말아라, 꿈에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통회하라”

도산은 민족 향상 운동은 도덕운동이지 정치운동이 아니라고 베듯이 구분했다. 나라가 독립한 뒤에라도 민족운동은 정치성을 띄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정치적 야심을 가지게 되면 그 운동을 정치에 이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던가.

그가 미국과 유럽에서, 만주에서, 조선에서 그렇게 몸 바쳐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밑바탕을 만든 댓가로 상해임시정부에서 대통령을 권유받지만 여러 갈래 독립운동가의 대화합을 천명하며 이승만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고 본인은 가장 낮은 직책인 초대 노동국 총판을 맡는다. 지금으로 본다면 노동부 장관이다. 하지만 한번 정권을 잡은 이승만의 비열한 장난으로 독립운동가들이 난도질당하고 남북은 둘로 갈라질 줄 어찌 알았으랴.

지금 우리는 도산의 유업으로 독립된 국가를 이뤘지만 정파와 이념에 몰려다니며 출세욕으로 가득한 오늘날의 위정자들은 그의 뼈에 사무친 충언을 기억해야 한다.

“김가는 김가의 자설(自說)만 주장하고, 이가는 이가의 자의(自意)만 고집하고 있으면 어떻게 통일될 날을 얻을 수 있겠소이까”

나라도, 지역도, 어느 집단도 마찬가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