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개봉작 영화 오펜하이머(원자폭탄의 아버지)
[편집국 칼럼] 개봉작 영화 오펜하이머(원자폭탄의 아버지)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8.21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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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음모의 두 세계

황량하고 광활한 미국 뉴멕시코주의 메마른 사막.

유년시절에 여행하면서 뉴멕시코 사막에서 거침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던 한 과학자가 다시 그곳에 돌아와 온 세상을 한 번에 파괴하고도 남을 위력의 원자폭탄을 만드는 실험을 한다. ‘세상에 일어날 전쟁의 종말을 위한다’는 소신으로...

하지만 그런 그의 의도는 명백히 빗나가고 만다.

트루먼 대통령이 원자폭탄을 만든 그의 노고를 치하하자 그는 악수하려는 손을 내밀며 말한다.

“각하,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습니다.”

“Mr. President, I have blood on my hands.”

떨리는 과학자의 손은 영광이 이니라 또다른 죽음의 서곡을 부르는 악마의 손이 됐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면 그 나라 또는 지구가 멸망하게 되기 때문에 서로 두려움에 전쟁이 종식될 것이라는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원자폭탄으로 멸망하지 않으려는 상대국에게 더 강력한 폭탄을 만들게 하는 이유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겸연쩍은 트루먼은 에둘러 돌려친다. “걱정 마시게. 폭탄을 만드는 것은 물리학자의 소임일 뿐, 폭탄 투하 명령은 대통령인 내가 내렸으니까 말이야”

어렸을 때부터 소심한 성격에다 내성적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어마어마한 원자 폭탄의 성공으로 한없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원폭이 투하된 곳에 버섯 구름이 피어나면서 아비규환으로 변하는 지옥을 바라보며 그는 통한의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이제 나는 죽음,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영화 ‘오펜하이머’의 명 장면이다.

8.15광복일을 기념하여 실로 오랜만에 개봉관 극장을 찾았다. 대한민국의 광복을 있게 한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제조의 실존 인물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휴일이라 그런지 극장가 지하주차장은 초만원이었다. 광복의 기쁨을 누리려는 애국시민일까, 아니면 국제 영화계 최고 대부 기업인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사와 영화계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위력을 맛보기 위함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그린 영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펜하이머를 필두로 한 물리학자들과 연합국이 독일 나치보다 더 빨리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이후 일본에 핵 투하를 한 후 일어나는 변화와 심리적 현상 등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영광과 얼룩진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모든 영광 뒤에는 그만한 반대 급부가 있기 마련이다. 승승장구한 배경 건너편에는 항상 저항이 있었다. 가장 위험한 적은 멀리 있는 적국 소련의 스파이나 저격범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지들이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타임즈 표지모델로 등장, 세계인의 시선을 모으고 최고의 영예를 누리는 위치에까지 도달했으나 그 영예를 질투하는 자와 그 영예를 이용하려는 자, 상대국의 음모 등이 어우러져 장장 180분을 숨 죽이게 만든다.

영화에서는 트리니티 실험이라는 역사에 남을 만한 핵 실험 장면이 등장한다. 1945년 7월 16일 5시 29분 45초에 발생한 미국 최초이자 지구 최초의 인공 핵실험이다. 상상을 초월한 위력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을 알리고 원자력 시대를 연다.

트리니티 실험은 첫 실험이었기에 결과를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강렬한 빛이 수 km 떨어진 산을 낮보다 환하게 비췄고 16km 떨어진 본부에서도 오븐처럼 강렬한 열이 느껴졌다. 240km 거리에 있던 사람도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이 하늘을 환하게 물들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버섯구름은 12km 높이까지 솟아올랐으며, 40km가 넘는 곳에서도 솟아오른 화구를 관측할 수 있었다. 폭심지 부근에는 직경 340m에 이르는 구덩이 전체가 강렬한 열로 인해 모래가 녹아 녹색의 방사능 유리로 덮여 있었다.

당시 핵실험을 했다는 소문이 뉴멕시코를 떠들썩하게 했지만 미국 정부는 “공군 기지의 무인 탄약 창고가 폭발했으나 사상자는 없었다”는 짧은 언급 뿐이었다. 사람들이 핵 실험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히로시마에 폭탄이 떨어진 뒤인 1948년이었다.

그것이 정치였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 세계는 비밀이 없다. 오직 사람의 생각과 의도에 비밀이 있을 뿐이다.”

속고 속이는 세상사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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