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우군(愚君)과 현군(賢君)
[발행인 칼럼] 우군(愚君)과 현군(賢君)
  • 장성투데이
  • 승인 2023.09.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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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천 발행인

 기원전 399년 봄,70세의 노철인(老哲人)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태연자약하게 그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자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아테네의 5백명 배심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떠날 때가 왔다. 우리는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간다. 누가 더 행복할 것이냐, 오직 신(神)만이 안다.”

소크라테스는 40세에서 70세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아테네 시민의 정신혁명을 위하여 그 생애를 바쳤다.

부패하고 타락한 아테네 사람들의 양심과 생활을 바로잡기 위하여, 교만과 허영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인격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그는 아테네 거리에 나가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가르치고 질책하고 호소하고 계도하였다.

그러나 아테네의 어리석은 민중은 그를 법정에 고소했다. 소장 내용은 이렇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정한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神)을 끌어들이고, 또 청년을 부패 타락 시켰다. 그 죄는 마땅히 죽음에 해당한다.”

소크라테스는 ‘불신앙과 청년의 유혹’이라는 두 죄명에 의해서 고소되었다. 아테네 시민 5백 명으로 구성된 법정에서 두 차례의 투표결과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아테네의 어리석은 시민이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이다.

민중은 사리사욕에 휩쓸리면 한심한 우중(愚衆)으로 전락한다.

민중은 올바른 지각을 가지면 슬기로운 현중(賢衆)이 된다. 민중은 우중이 되기도 하고 현중이 되기도 한다.

민중의 질(質)이 문제다. 아테네 시민의 무지와 악의와 오판이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것은 진리를 죽인 것이요, 정의를 죽인 것이다.

그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기전에 사랑하는 제자 플라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도 배신자나 변절자 살인범이나 패륜아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나 인생을 바로 살기를 원한다. 바로 사는 것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첫째로 진실하게 사는 것이요‘둘째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셋째로 보람 있게 사는 것이다.” (에밀)을 쓴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말이다. 한국인은 철학이 없는 국민이다. 철학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 혼탁한 난세를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투철한 철학을 가져야한다.

한 인간 개개인도 우중과 현중으로 서로 뒤바뀐다. 다 이겨놓은 선거도 순식간에 뒤바뀌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자만과 과욕이 부른 자기의 실패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능력 있는 지도자라면 군민들 또한 인기몰이나 인간적인 정에 의해 다른 사람을 선택한 우둔한 실수를 범한다. 결국 그 지역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발전은 없고 퇴보하며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바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정치도 바로하고 , 경제도 바로하고, 교육도 바로하고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확고한 철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 그리고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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